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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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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사투를 벌이는 식물들의 생존기
서평자
노슬예
발행사항
460 호(2018-06-29)
랩걸

목차

  • 프롤로그
  • 1부 뿌리와 이파리
  • 2부 나무와 옹이
  • 3부 꽃과 열매
  •     에필로그
  •     감사의 말
  •     덧붙이는 말

    서평자

    노슬예(국회도서관 자료조직과)

    서평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사투를 벌이는 식물들의 생존기

    녹음이 짙어지는 계절이다. 새싹이 돋아나는 봄을 지나 자연이 주는 풍요를 만끽하기에는 여름만큼 좋은 계절도 없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니 온통 초록빛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매일 식물에 둘러싸여 살고 있지만 그것들을 잘 보진 못한다. 그래서일까, 식물과 함께 우리의 인생에 새로운 시선을 부여하는 과학자 호프 자런의 에세이 『랩걸』은 더 뜻 깊게 다가온다. 
     
    『랩걸』의 저자 호프 자런은 26살에 교수가 되어 2005년 가장 뛰어난 지구 물리학자에게 수여하는 제임스 매클웨인 메달을 받았으며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풀브라이트 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유일한 여성 과학자이다. 이쯤 되면 뛰어난 과학자의 성공담이겠구나 싶지만 오히려 『랩걸』은 그녀의 성공담이 아닌 실패담에 가깝다.  
     
    『랩걸』은 ‘과학실 소녀’라는 뜻의 제목처럼 과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실험실에서 뛰어놀던 소녀가 약국과 병동사이를 오가며 약을 배달하는 학부생을 거쳐 가족도 친구도 아닌 동료 ‘빌’과 함께 과학자로서 고군분투하는 생존기다. 뿌리와 이파리, 나무와 옹이, 꽃과 열매. 총 3부로 이루어진 구성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나무가 성장하듯 한 사람의 성장기를 생생하게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이 책이 무려 ‘과학자’가 쓴 ‘과학’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독자층에게서 사랑 받은 이유는 권위에 기대지 않은 담백한 일기장처럼 쓰였기 때문이다. 연구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3000마일(약 4,800킬로미터)을 운전해 학회에 참여하는 모습, 은퇴를 앞둔 교수가 더 이상 쓰지 않는 실험 장비들을 가져와 연구실을 꾸미는 모습, 오랫동안 조울증으로 고통 받으며 임신 후엔 연구실 출입 금지까지 당하는 모습. 계속되는 고난 속에서 희망과 좌절을 반복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버텨내는 저자의 삶은 우리의 삶과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쯤 되면 식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감상에 젖을 만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수십 년 동안의 연구 끝에 식물과 인간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식물은 식물의 방식대로 인간은 인간의 방식대로 살아간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이러한 깨달음은 현대에서 요구하는 획일적인 생존방식 대신 각자가 살아가고 있는 방식에 대한 확신과 적지 않은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여기에 유년기를 기억하는 가문비나무, 2000년을 기다린 연꽃 씨앗, 서로 다른 공간에 존재하지만 유전적으로는 같은 버드나무, 팔을 휘두르며 성장하는 식물과 같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식물의 모습과는 달리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사투를 벌이는 식물들의 생존기는 이 책이 ‘과학’에세이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며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스스로에게조차 너그러울 여유조차 없는 시대 속에서 『랩걸』은 오늘도 여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응원이 될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정답보다는 해답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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