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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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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 완벽한 페미니즘이라는 환상
서평자
여성학 전문가 임희숙
게시일
39 호(2018-11-01)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 완벽한 페미니즘이라는 환상
  • 청구기호 :305.42 -18-50
  • 서명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 완벽한 페미니즘이라는 환상
  • 편·저자 :이라영
  • 발행사항 : 동녘(2018-07 )
  • PDF : 『전문가 서평』 - 39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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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자

여성학 전문가 임희숙 (연세대학교 교수)

서평

2018년은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새로이 기억되는 해가 될 것이다. 전 세계적인 ‘미투’ 운동으로 가부장제 사회가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게 강제했던 침묵이 깨어졌고, 그들은 ‘성적 수치심’을 넘어서서 스스로 말하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올해 노벨평화상이 전시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에게 헌신한 드니 무퀘게(콩고민주공화국)와 자신이 당한 성범죄의 폭력성을 세계에 고발하고 증언한 나디아 무라드(이라크)에게 수여된 것도 큰 의미가 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그들이 “자신의 안전까지 무릅쓰고 전쟁 과정에서의 성범죄와 용감하게 싸우며 희생자들을 위한 정의를 추구”했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수상 후 그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세계인들이 오늘날 만연하는 성폭력에 함께 ‘저항해야 할 책임’을 강조하고 호소하고 있다. 전쟁에서 무기화되는 성폭력에 저항하는 일은 불의한 젠더 불평등을 해소할 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평화를 구현한다는 점에서 이 시대의 절실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를 읽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에 대해 성찰하는 일은 가치가 있다. 이 책의 저자 이라영은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성폭력 현상(언어적, 육체적, 심리적, 정신적 폭력 등)에 주목하고, 그러한 성폭력을 유발하고 유지하는 권력의 문제를 규명하고, 여성의 몸에 대한 일상화된 가부장제 문화의 폭력성을 드러내고, 성폭력을 둘러싼 장소와 공간의 의미를 구체적 사례를 통해 밝힌다. 나는 이와 같은 이라영의 시도를 ‘현장 페미니즘’의 한 모델로 분류하고 싶다. 그녀의 작업에는 예술사회학을 공부(프랑스)한 뒤에 여성 인권운동(미국)에 참여하고 현재 저술 활동(한국)에 집중하고 있는 저자의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통찰력이 이 저서에 잘 반영되어 있다.  
 
책 제목에서 드러난 ‘진짜’는 ‘가짜’와 구별되는 것으로 이 둘 사이의 경계와 대립을 전제로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진짜’를 선호하고 ‘가짜’를 꺼리고 제거하려는 욕망을 갖는다. 이와 같은 양자 간 택일은 이질적 집단 사이는 물론 동질의 집단 내부에서도 이루어진다. 페미니즘 진영도 예외는 아니다.  
 
저자는 이런 진위 여부의 판가름에서 그 ‘진짜’를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지를 묻고, ‘진짜’를 정의하고 선택하는 데 작용하는 권력과 그 의도를 의심한다. 객관성과 중립성을 내세우며 보편적인 ‘진짜’를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를 검토한다. 왜냐하면 “여성들은 기존에 폭력으로 규정되지 않던 문제를 폭력이라 말하고 있으며,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다른 방식으로 정치 행위를 하며 연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하나의 진짜 길만 있는 사회보다는 여러 종류의 다른 길이 있는 사회”를 지지하며 사람들이 삶의 다른 가능성을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특히 역사상 오랫동안 침묵을 강요받고 내면화해온 여성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때로 너무 요란스럽다거나 여성답지 못하다 하여 ‘자연스럽지’ 않다는 평가를 받을지라도, 계속 현실 참여적으로 발언하기를 바란다. 누군가가 강조하는 ‘자연스러움’은 ‘본래’부터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권력에 의해 구성되었다는 점을 상기하자는 것이다.  
 
오늘의 세계는 전 세계 여성의 세 명 중 한 명이 일생 동안 적어도 한 번은 물리적 폭력이나 강간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고 한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여성들에게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폭력에 대한 의식적, 무의식적 공포는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여기서 보다 심각한 문제는 성폭력의 공포와 불안이 ‘성적 수치심’과 결합하여 피해자의 고통을 배가시키고 성폭력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가로막는 일이다. 수치심은 인간 영혼에 깊이 뿌리 내려 무력감과 굴종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성폭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당한 공포와 불안에 저항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성적 수치심’의 개념까지도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성폭력에서 ‘성적 수치심’을 가져야 하는 사람은 피해 여성만이 아니라는 문화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성폭력을 극복하는 과제는 이제 ‘여성 문제’나 ‘당사자 문제’로 제한하기보다는 건강한 ‘성적 수치심’을 지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인류의 책임’으로 생각하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2018년 성폭력에 대한 책임과 저항을 몸소 보여준 한 남성과 한 여성이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모습이 이를 단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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