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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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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역사 선생님도 가르쳐주지 않는 조선왕조 건강실록
서평자
한의학 전문가 류정아
게시일
43 호(2019-01-01)
역사 선생님도 가르쳐주지 않는 조선왕조 건강실록
  • 청구기호 :951.5 -17-74
  • 서명 :역사 선생님도 가르쳐주지 않는 조선왕조 건강실록
  • 편·저자 :고대원 외 8인 공저
  • 발행사항 : 트로이목마(2017-10 )
  • PDF : 『전문가 서평』 - 43호.pdf
  • 상세보기 > 워드 클라우드 > 전문가정보데이터베이스

추천도서

서평자

한의학 전문가 류정아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서평

2019년 새해를 맞이하여 묵은해의 먼지를 털어내고 희망과 활력이 가득한 신선한 기운을 충전하고 싶은 즈음이다. 더불어 내 인생에서 소중한 부분이 될 한 해를 이끌어줄 훌륭한 영감을 발견하고 싶은 때이기도 하다.  
 
누군들 자신의 인생이 멋있고 찬란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또한 그런 인생을 살기 위해 기꺼이 노력과 시간과 정성을 쏟을 준비가 되어 있고,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뜻한 바를 이루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의 바람이나 노력에 못 미치는 결과를 얻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두 가지 경우에 결과적인 차이를 초래하는 비밀을 밝히기 위해 인류는 서술되어진 것으로서의 ‘역사’를 발명했는지도 모른다. 서술되어진 ‘역사’를 통해 인생의 당위가 아닌 실제적 사실을 살펴봄으로써 한 사람의 인생을 그 자신의 바람대로 펼쳐지게 하는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역사 선생님도 가르쳐주지 않는 조선왕조 건강실록󰡕, 이 책의 부제는 “반전과 미지의 기록 《승정원일기》에서 찾은 조선 왕실 사람들 생로병사의 비밀”이다. 왕조실록에는 자세히 수록되지 않은 왕실 사람들의 의료기록과 생활습관 및 의료관련 사건들을 통해 그동안 막연한 소문과 추측이 무성했던 인조의 소현세자 독살설, 장희빈의 경종 치상 설 및 인현왕후 치사 설 등의 전말을 한의학의 시각에서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점에 일단 흥미가 간다. 그러나 더욱 흥미가 가는 점은 평균수명 46세의 조선 국왕들 중에서 82세의 수명을 누리면서 52년간 재위한 영조대왕이나 14세의 병약한 몸으로 왕위에 올라 46년간 재위하며 60세의 수명을 누렸던 숙종대왕의 장기 집권이 가능했던 주요한 요인이 한의학적 건강관리와 예방을 중시하는 의료였다는 점이다. 영조대왕은 인삼, 백출, 건강, 감초 등이 포함된 건공탕(健功湯)을 거의 7년간 매일 하루 세 첩씩 복용함으로써 건강장수와 함께 75세 나이에 검은 머리가 다시 나는 회춘의 효험까지 보았다. ‘건공탕(健功湯)’이라는 처방명은 사실 영조 본인이 지은 것으로, 자신의 체질과 생리에 꼭 들어맞게 처방되어 좋은 효험을 내는 한약 처방에 새로이 고유한 처방명을 부여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그런가하면 숙종대왕은 평생 다발성 관절통에 시달렸고 사지가 붓고 아픈 통풍(痛風)으로 고생하였으며 감기, 해수, 위장병도 꾸준히 앓았다. 1684년(숙종10년) 1월에는 모후인 명성왕후 사망의 여파로 인해 해수병, 위장병, 통풍이 동반 발병하여 더 이상 탕약을 내복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때 내의원에서는 윗배 한가운데 중완혈(中脘穴)에 뜸뜨기를 권하여 차츰 위장병, 해수병 증상이 개선되고 일주일간 100장을 뜨고서는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었는데, 이를 ‘중완혈 수구사(中脘穴 受灸事)’라고 일컫는다. 해수, 관절통, 위장병 개선 및 체력 회복의 효험을 경험한 숙종대왕은 이후로는 당장 발병한 증상이 없더라도 매해 1월과 2월 사이에 중완혈에 100장 뜸뜨기를 반복하여 숙종40년까지 31년에 걸쳐 시행하였다. 숙종대왕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짊어진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식사와 잠자리 그리고 급한 성격으로 인해 여러 지병으로 고달팠던 신체를 가졌으면서도 46년간 집권하며 강력한 왕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중완혈 수구(中脘穴 受灸)라는 맞춤 치료법을 찾아 꾸준히 시행함으로써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조대왕과 숙종대왕의 사례는 비단 조선시대 국왕이라는 특정 시간, 특수 신분에만 한정되지 않고 현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각종 스트레스와 업무에 시달리는 학생, 직장인, 주부, 자영업자, 공무원 그리고 건강장수를 희망하는 노인의 상황에 고스란히 투영될 수 있다. 누구든 자신이 해야만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체력과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곧 한 사람의 인생을 그 자신의 바람대로 펼쳐지게 하는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요소는 바로 ‘체력과 건강’이라는 말이 된다. 조선의 의학이었던 한의학은 각 개인의 특수 상황에 맞춤한 치료법이자 건강관리법으로 우리 국민 모두의 인생이 각자의 바람대로 펼쳐지도록 ‘결정적으로’ 도울 수 있다. 
 
한편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허준과 허임, 백광현 같은 드라마를 통해 알려진 인물 외 《승정원일기》에 활약하고 있는 조선의 명의들을 만나보는 것이다. 숙종대 두창(痘瘡; 천연두) 전문의 류상(柳瑺)은 인경왕후 두창 치료 실패를 딛고 숙종대왕의 두창을 훌륭히 치료하고 이어 당시 왕세자인 경종과 연잉군인 영조 및 인현왕후의 두창과 홍역 등을 잘 치료한다. 류상(柳瑺)은 당상관에 이르는 관직과 전답, 노비, 각종 현물을 포상으로 받았을 뿐만 아니라 두창 전문서 "고금경험활유방(古今經驗活幼方)"을 남겨 치료술을 전수함으로써 아들 류중림, 손자 류원, 증손자 류증모, 류증모의 아들 류환익에 이르기까지 5대에 걸쳐 왕실 의료를 담당하는 한의사 가문을 이루었다. 이순신 장군의 부하로 원래 용맹한 무관이었던 김덕방(金德邦)은 포로로 잡혀 간 일본에 조선의 침구법을 전수한다. 김덕방(金德邦)이 어떻게 의술을 익히게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의 침구법은 일본의 의성(醫聖) 나가타 도쿠혼(永田德本)을 비롯해 기무라 겐테이(木邨元貞), 무라카미 게이난(村上溪南) 같은 주요 침구의에게 전수되었고, 1778년 간행된 침구 서적 "침구극비초(鍼灸極秘抄)"에 수록되어 19세기 유럽에까지 전파되었다. 1774년부터 1794년까지 일본, 인도네시아, 인도에서 동인도회사의 책임자로 근무한 네덜란드 의사 이삭 티칭(Isaac Titzing; 德勝)이 조선의 침법에 호기심을 가지고 "침구극비초"를 입수하여 유럽에 소개하였던 것이다. 1825년 프랑스 의사 사흐랑디에르는 그의 논문에 이삭 티칭의 필사본을 번역하면서 "침구극비초"가 일본과 중국에서 히포크라테스 법전 역할을 하는 ‘침의 법전’이라고 서술한다.  
 
더불어 “꼬레아 침이 최고다!”라고 쓴 텐 라인(Willem ten Rhijne)의 1683년 "관절염 치료" 등 함께 소개된 의학 사료들로부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근대 시기 ‘양방향의 의학사’를 공부하게 되는 것도 이 책 "역사 선생님도 가르쳐주지 않는 조선왕조 건강실록"의 간과할 수 없는 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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