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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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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평범한 사람들의 악행에 대한 보고서
서평자
강창래
발행사항
403호(2018-11-14)
어느 독일인의 삶

목차

  • 서문 - 토레 D. 한젠
  •  
  • 1 우린 정치에 관심이 없었어요 - 1930년대 베를린의 한 젊은 여성
  •  
  • 2 한마디로 히틀러는 새로운 사람이었으니까요 - 제국 방송국으로의 진출
  •  
  • 3 약간 선택받은 느낌이었어요 - 제국 선전부로의 비상
  •  
  • 4 몰락의 순간까지도 충성을 - 선전부에서의 마지막 나날들
  •  
  • 5 우린 아무것도 몰랐어요 - 수용 생활과 새 출발
  •  
  • 6 난 책임이 없어요 - 백세 노인의 총평
  •  
  • 괴벨스 비서의 이야기는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 토레 D. 한젠

    서평자

    강창래(작가, 강사, 대중문화 기획자(출판 부문))

    서평

    평범한 사람들의 악행에 대한 보고서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못한 게 없어요. 그러니 져야 할 책임도 없죠. 혹시 나치가 결국 정권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독일 민족 전체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지만요. 그래요, 그건 우리 모두가 그랬어요. 선전부에 들어간 것도 내 개인적인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어요. 그건 상부 지시였고, 근무 지침상 따라야 할 의무였어요. (206~207p.) 
     
    한나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년)이라는 유명한 책이 있다. 부제가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인데 이것이 책의 주제이다. 이때 평범성이란 말은 the banality를 번역한 것인데, 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악행에 대한 보고서)’라고 번역하는 게 더 정확해 보인다. 저자는 악을 저지를 것처럼 보이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르는 악행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주장하기 위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예로 드는 것은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1990년대 이후 자료가 공개되면서 아이히만을 평범한 사람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2001년 독일에서 출간된 베티나 스탕네트의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을 보면(아직 한국에 번역되지 않았다) 그는 명령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었다. 인종 말살 정책을 포함해 온갖 전쟁 범죄를 앞장서서 저질렀던 슈츠슈타펠 부대의 중령으로 홀로코스트의 실무책임자였던 것이다. 자발적이고 구체적인 악행의 증거들은 충분해 보인다.  
     
    거기에 비하면 이 책, ≪어느 독일인의 삶≫의 주인공인 브룬힐데 폼젤은 한나 아렌트의 주장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예로 보인다. 그는 나치 독일 시절 괴벨스의 속기 비서였다. 괴벨스는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으로 히틀러를 우상화해서 독재자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출판과 방송, 영화 등의 미디어를 통제하면서 유대인을 탄압하는 등 나치 정권 악행의 최전선에 섰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의 속기 비서였던 사람은 평범한 사람일까? 시스템에 적응하고 출세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평범한 사람’으로서 명령에 따르기만 했던 사람일 수 있을까? 
     
    이 책은 바로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브룬힐데 폼젤은 어린 시절에 우연히 뛰어난 속기 실력을 가지게 되고, 그 때문에 방송국에 취직할 수 있었다. 나치 정권이 언론을 통제하던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정치적으로는 조금도 관심이 없지만’ 그저 많은 월급을 받고 더 나은 사회적인 대우를 받기 위해 나치당에 가입한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내용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집에서 자연스럽게 순종을 배웠어요. 가정 안에서 사랑과 배려 같은 건 부족했죠. 오히려 우리는 순종하는 가운데 서로를 속이고, 거짓말하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에 익숙해졌어요. 그러니까 이런 일들을 통해 원래 아이들에게는 없던 특성이 우리 속에서 깨어난 거죠.”(29~30쪽) 
     
    이 말은 103세가 되어서야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은 것이다. 대략 100년 전의 어린 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말이다. 과연 기억인지, 자신의 행적을 합리화하기 위해 끝없이 되새김질한 창작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은 정말로 나치당에 관심이 없었음을 강조한다. 그저 속기를 잘하는 성실한 기술자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국에 취직해서 많은 월급을 받기 위해서는 당원이 되는 게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평범한 속기 기술자가 권력의 핵심부에 스며들 수 있었던 것은 상관에 대한 맹목적인 순종과 충성심이었다. 이 책에는 당시에 저질러졌던 끔찍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그에게 그런 일은 자신의 업무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고 되풀이해서 말할 뿐이다. 그러면서 받은 보상에 대한 만족감을 감추지 않았다. 
     
    “약간 선택받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거기서 일하는 것이 만족스러웠어요. 모든 것이 편했고 마음에 들었죠. 쫙 빼입은 사람들, 친절한 사람들……. 그래요, 난 그 시절 껍데기로만 살았어요. 어리석게도요.”(118~119쪽) 폼젤의 반성이 이런 정도다. 단지 어리석었다고만 자책할 뿐 자기는 조금도 책임이 없고, 자기 입장이 되면 누구라도 그러했으리라는 것이다. 그 업무라는 것이 죄 없는 사람들을 대량학살하는 것이든 아니든 그런 것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자기는 몰랐노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조사 결과를 보면 그 당시 평범한 독일인 중 40% 정도는 홀로코스트를 알고 있었다.  
     
    이 책의 현대적인 의미는 사회학자인 토레 D. 한젠의 해설 부분에 아주 자세하게 나온다. 그 부분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 있는 수많은 ‘브룬힐데 폼젤들의 악행’을 가볍게 볼 경우 어떤 불행한 사태를 맞을 수 있을 것인지 경고하고 있다. 그 부분까지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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