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도서관 개관 70주년]
국회도서관의 어제와 오늘_70년 역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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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도서관의 시초, 어떤 모습이었을까?

1951년 7월 26일, 윤택중 의원 외 16인이 ‘국회도서실설치에 관한 결의안’을 발의했습니다. 같은 해 9월 10일 결의안이 통과되어, 이듬해인 1952년 2월 20일 한국전쟁 때 전시수도 부산에서 장서 3000여 권과 직원 1인으로 ‘국회도서실’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소규모 자료실로 시작하였으나, 전란 중에 의회도서관의 시작을 알린 뜻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선 단 한 칸의 도서실이라도 설치하여 국내외의 신문 등이라도 입수하도록하여
우리의 사명에 만분지일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함이 본 결의안의 취지입니다.”

- 국회도서실설치에 관한 결의안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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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도서관의 열람봉사 조직, 언제 생겼을까?


열람봉사를 전담하는 조직이 생긴 것은 1955년 11월 16일 민의원사무처 직제개정에 의하여 도서실이 도서관으로 승격됨으로써 도서관에 도서과와 열람과를 설치하면서부터였습니다. 열람과는 당시 도서의 대출열람과 고증에 관한 사항을 담당했으며, 18인의 직원을 두게 되면서 열람업무를 관장하게 되었습니다.


일반 국민을 위한 열람서비스의 시작은?


1961년 6월 10일 국가재건최고회의도서관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조직과 분장업무가 제정됐습니다. 열람과는 도서관 이용대상을 종전에 국회의원 및 직원으로 국한하던 것을 1961년 7월부터 최고회의 의원 및 직원, 최고회의 산하기관, 행정부‧사법부, 국군장교 및 각급 지방공무원, 문화기관‧학술단체‧언론기관 종사자 등으로 확대했고, 같은 해 9월 18일부터 대학생 이상의 일반에 대해서 열람실을 개방함으로써 최초로 일반인에 대한 열람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1962년 8월 8일 직제가 개정되면서 열람과는 열람계, 장서계, 참고계로 개편되어 열람계는 정기간행물열람실, 열람실, 국가재건최고회의 분관 등 7개의 열람실을 관리했습니다. 당시 참고계는 직접 이용자에 대한 참고봉사뿐만 아니라 전화 및 서신, 그 외의 방법으로 질의에 대한 사항을 답변하는 회답업무를 담당했습니다. 다음 해인 1963년 11월 13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제123차 상임위원회에서 ‘국회도서관법’이 가결되었고 같은 해 12월 17일부터 효력이 발생하면서, 입법조사기능과 도서관봉사 기능을 갖춘 선진적 입법부도서관의 조직형태를 갖추게 되어 1964년 입법부 내 독립기관으로 국회도서관이 출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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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에서 여의도로 이전, 열람 기능 강화


1975년 9월 국회가 여의도 신청사로 이전함에 따라 같은 해 10월 22일 국회도서관도 이전작업을 마치고 열람시설을 재정비하여 새롭게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신청사 열람실은 의원열람실, 일반열람실, 공산권자료열람실, 여성관계자료실, 마이크로필름열람실 등 5개의 열람실로 구성됐습니다. 1981년 법령자료실을 신설했으며, 1982년에는 정기간행물실, 한국박사석사학위논문열람실, 신문열람실을 신설했습니다.


1988년 독립건물로 새 출발, 열람시설에는 어떤 변화가?


1988년 국회도서관은 설립된 지 약 36년 만에 오랫동안 갈망해 오던 독립건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989년에는 입법부 내 독립기관으로 열람시설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의원개인열람실, 일반이용자를 위한 개인열람실을 최초로 설치했으며, 이 밖에 의원열람실, 석박사학위논문실, 참고열람실, 일반열람실, 정기간행물열람실, 신문열람실, 의회법령자료실, 정부간행물열람실, 마이크로필름자료실 등을 설치했습니다. 1989년에는 의회도서관으로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의회법령자료과를 신설하고 의회 및 법령자료에 대한 열람 및 참고봉사를 강화했으며, 대출예약제를 활성화하고 상호대차제를 도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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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목록 시대에서 전자화시대로의 전환기


일반 이용자가 증가함에 따라 대출 및 반납의 전산화가 필요하게 되었고, 1994년 대출대 한 켠에 정보검색상담대를 설치하고 3명의 사서를 배치하여 일반 이용자의 정보검색을 지원했으며, 1996년 바코드시스템을 활용한 자료대출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국회도서관은 1997년부터 지식정보사회의 핵심인프라 사업인 전자도서관 구축사업을 시작했으며, 1998년 국회도서관의 전면 개방으로 중앙홀에 검색용 단말기를 증설했습니다. 멀티미디어자료실에는 인터넷전용코너를 설치하는 등 새로운 정보환경의 변화를 반영했습니다.


2000년 이용자들이 워드작업을 할 수 있도록 2층 브라우징룸에 한글워드프로세서 전용PC를 설치했으며, 2001년 원문검색용 단말기 41대와 서지검색용 단말기 13대 등 총 75대를 운영했습니다. 2001년 5월에는 중앙홀에 있던 모든 카드함을 3,4층 서고의 한 켠으로 옮김으로써 카드목록시대의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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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람실의 변천사, 지식정보서비스 변화의 척도


2000년대 이후 국민과 소통하며 발빠르게 변화를 거듭한 국회도서관은 소장자료의 원문DB 구축을 추진하는 한편, 늘어나는 장서의 효율적 관리‧보존을 위해 서고동 건립을 추진했습니다. 2006년 의정관 서고로의 자료이전사업을 완료, 도서관 열람실의 재배치 및 리모델링에 착수했습니다. 먼저 2층과 5층으로 분리됐던 정기간행물열람실을 5층으로 통합했으며, 2007년 12월 기존의 멀티미디어실 자료와 최신자료실의 참고도서 등을 통합해 디지털입법자료센터를 신설했습니다. 2008년에는 사무실 및 열람실 재배치에 따라 법령자료실은 디지털입법자료센터(현 디지털정보센터)로 통합됐으며, 2014년 5월 13일 법학도서와 각국의 법령집, 의회자료, 국제기구자료, 온라인 법률정보 전용 검색 코너 등을 갖춘 법률정보센터를 오픈했습니다. 이후 국회도서관은 최상의 지식정보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변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개관 70년, 그리고 다음 70년을 위한 새로운 도약


개관 당시 3000여 권의 장서와 직원 한 명으로 시작한 국회도서관은 현재 최상의 의회정보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대표도서관으로 현재 750만 책과, 3억5167만 면에 이르는 원문DB를 구축하여 데이터 기반의 다양한 입법·정책정보를 효과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최신기술을 활용하여 최상의 의회・법률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회도서관 최초의 지역 분관인 국회부산도서관은 3월 개관을 앞두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함께한 국회도서관은 앞으로도 시대적 변화와 요구에 적극 대응하고, 더 나은 미래를 선도하는 세계 일류 도서관으로 도약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