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거울나라의 북한' 깊이 읽기
우리가 아주 쉽고 흔하게 상상하는 것이 있다. 개미만큼 작아져서 거인들의 발밑에서 허둥대거나 거인이 되어서 개미처럼 작은 사람들 때문에 걷는 것조차 어려워지거나. 이 두 가지 환상, 혹은 상상은 우리 내부에 내재된 몽상가적 기질이 불현 듯 뛰쳐나와 혼돈을 일으키는, 뇌가 벌이는 이상 현상일지도 모른다.
북한이 그렇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았던 북한은 김정은이라는 지도자로 인해 우리 뇌리에 새겨진 인식들이 많은 부분 지워지고 다시 입력되어지는 중이다. 채 1년도 안돼서 말이다.
이제는 우리의 대화 상대인 북한을 알아야 할 시점이라 생각하는 와중에 <북한, 비정상의 정상국가>라는 책을 만났다. 우리에게 이질적 존재이면서도 민족적인 그리움의 대상인 북한에 대해 책은 이념과 제도, 정책 등으로 자세히 나눠 보편성과 특수성, 연속성과 변화를 토대로 통찰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공동 저자인 오공단과 랄프 해식이 무슨 이유로 <거울나라의 앨리스> 첫 장면을 서문에 얹었는지 처음에는 다소 의아했다. 저자의 호흡을 따라가다가 얼핏 이유를 알게 됐다. 이들은 앨리스가 ‘정말로’ 얼떨결에 찾아 들어간 거울 나라처럼 모든 것이 반대이고 거꾸로인 북한의 실상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집어든 가장 큰 이유는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리며 수십 년을 이어온 냉전에 변화의 바람이 부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를 보는 국제사회가 북한을 다시 보려는 변화의 기운이 감돌고 있는 점도 북한을 '깊이 읽고' 싶게 했다. 그래서 우리도 앨리스처럼 북한 속으로 얼떨결에 들어가 봐야 하는 지도 모른다.
책속의 북한 역시 '수령'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돌아가는, 거울 속으로 우연히 들어간 앨리스가 느끼는 이질감을 여전히 간직한 나라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안다고 하는 것들에 대해 책은 북한의 정치, 경제, 이념, 사회, 대외관계 등 체제와 대내외 정책 전반에 대해 차근차근 풀어내며 제대로 알라고 충고한다. 오랫동안 누적된 돼 온 북한의 ‘비정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데 필요한 것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서문에서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우리는 설령 가까운 미래에 북한이 무너진다 하더라도 북한과 북한 주민들에 대해 보다 심층적인 이해를 한다면 세계가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국을 보다 잘 대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김일성 사망(1994년) 이후인 1990년대 후반 출간된 책은 냉전시기 김일성과 김정일의 통치를 중심으로 한 북한의 모습을 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김일성이 주창한 ‘주체사상’이다. 저자는 “국가적 자립과 한국 민족주의의 결합으로 정의하는 것이 주체를 이해하는 출발점”이라고 언급했다. “주체는 아이디어라기보다는 마음의 상태이다”라는 브르스 커밍스의 설명도 덧붙였다. ‘나’라는 존재가 자신의 참다운 주인이라는 의미다.
저자는 이 주체사상이 김일성 당시에는 인민 대중 속에서 구현하려한 민족주의적 지배 이념이었다면 김정일 통치시기에는 정치적 신조와 종교 사이를 파고들어 하나의 숭배 이념으로 변모했다고 정리했다. 하지만 주체를 철학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역사 왜곡과 과장, 수시로 바뀌는 설명에 졸가리를 잡지 못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오늘날 김정은 시대의 북한을 이해하는데 여전히 유효한 의미를 지닌다.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북한이 어떠한 결말을 선택하게 될지 모두가 주시하는 이 시점에서 거울나라처럼 기이하고 수수께끼 같은 사회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돕는데 시의적절한 의미를 갖는다. 북한이라는 사회를 이해하는 하나의 지침서인 이유다.
북한의 근간을 이루는 군대에 대한 관찰도 도드라진다. 1997년 6월26일 로동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인민군대는 혁명의 기둥이고 주력군이며 군대이자 당이고 국가이며 인민이라는 것이 위대한 장군님의 군사중시사상의 핵이다.” 북한에서 군이 가지는 위상과 힘을 이처럼 적확하게 설명한 것도 없다.
김일성의 뒤를 이은 김정일이 1993년 국방위원회 위원장에 오른다. 재미있는 것은 군과의 인연이 없는 김정일은 평소에 ‘경애하는 장군님’이라는 호칭 대신 ‘주석’의 직함을 선호했다는 점이다. 그가 받은 유일한 군사훈련도 대학에서 받은 2개월짜리 의무군사훈련이 전부다. 하지만 북한에서 군이 가지는 상징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김정일 역시 김일성 사망 이후에는 군에 대한 대대적인 승진을 통해 자기 사람 심기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통일에 대한 저자의 시선이 지금의 상황과 얼추 맞아가는 지점도 있다. “북한이 붕괴되지 않는다면 미국은 한반도의 분단에 대해 의심할 여지없이 일정부분 책임이 있기에 통일을 위해 남한을 도와야만 한다.(중략) 통일 후의 한국은 거의 극복하기 어려운 난관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재교육이 빨리 시작되면 될수록 더 바람직하다” 90년대 말 시점에서 보는 판단이라고 무시할 수 있지만, 지금 불고 있는 변화의 순풍이 언제 다시 역풍으로 바뀔지 알 수 없는 일이라 새겨둘 만하다.
책이 발간된 시점이 90년대 말이라 문재인 대통령의 대화 상대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야기가 빠진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허나 결국 선대의 통치자들이 다져놓은 토대 위에서 지금의 북한이 흘러가고 있는 만큼, 북한 사회의 근간을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