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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대학과 권력
해방 이후 숨 가쁘게 달려온 현대사의 여정에서 개혁의 최후 보루였던 대학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그리고 무엇보다 대학교육 보편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스로 개혁에 나섰다... 대학이 자율과 공익성을 상실할 때, 앞으로 갈 길은 어디인지 궁금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대학이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323p.) 누구나 충격을 계속 받으면 둔감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둔감해졌다고 실제 충격의 강도가 약해질 리는 없다. 지금 우리는 너무 둔감해진 나머지 위험 수위를 훌쩍 넘어섰는데도 정작 충격을 잘 실감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필자가 대학위기론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할 때마다 으레 떠올리는 생각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대학 위기 운운이 상투어가 된 지는 오래다. 대학과 관련해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개탄의 어조, 진단의 논리도 비슷비슷하다. 물론 여기서 이러한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말하고 싶은 것은, 지난 20년간 대학과 관련해서 전례 없는 각종 문제들이 쏟아져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위기에 대한 고민은 이렇게 정해진 순서를 지겹게도 반복해 왔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대학과 관련해서 현재 불거지고 있는 문제가 그저 점진적 체질개선만으로는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대학이란 이름의 생태계 자체의 존망이 걸린 총체적 위기를 징후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는 더욱 커진다. 단적인 예로,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 때문에 우리는 대학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대학 및 그 교원의 대폭 정리는 불가피하며, 살아남았다 해도 근본적으로 바뀐 ‘생태계’의 조건 속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생존을 모색해야 할 터다. 하지만 한국대학의 ‘생태적 위기’가 목전에 닥친 현재, 대학에 몸담은 학계의 지식인들이 이런 시도를 한다는 소식은 좀처럼 들려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한국은 대학도 위기이지만, 대학위기론 자체도 위기라 할 만하다. 그동안 일관된 시각과 체계적인 분석 틀을 가지고 한국대학의 역사적 궤적 전반을 훑는 작업이 거의 없었다. 이것은 한국의 지식인들이 대학 밖의 사회와 문화에 대해서는 비판적, 혹은 성찰적인 분석들을 수행해 왔지만, 정작 자신들이 발 딛고 살아가는 생태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침묵하거나 외면해 왔음을 의미한다. 올해 간행된 김정인 교수의 저서 「대학과 권력」은 그런 점에서 대단히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저자는 정부보고서와 대학이 자체 발간한 기념지, 신문ㆍ잡지의 관련 기사 및 논설을 씨줄로 삼고, 최근 10여 년간 다소나마 진전을 보였던 대학사 연구 성과들을 날줄로 삼아 지난 100년간의 한국 대학의 궤적을 한 권의 단행본으로 그려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한국대학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다룬 본격 연구서로는 거의 첫 사례로, 우리 학계도 비로소 ‘한국대학사’라는 것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저자가 대학을 통해 보고자 하는 것은 ‘권력’이란 점도 의미심장하다. ‘대학 그 자체가 무엇인가’를 묻는 대신 ‘누가 대학을 결정하고 주도하는가’에 주목하려는 시도로, 저자의 문제의식이 단지 대학의 역사를 규명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작금의 한국대학이 처한 위기에 대응하려는 데 있음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저자는 현재 대학정책을 좌우하는 세 가지 힘을 대학권력(즉, 사학권력), 국가권력, 시장권력으로 규정하고 그것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해 간다. 오늘날 대학의 현재와 미래를 좌우하는 이 세 가지 권력은 기원과 구조를 달리하지만,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공공성의 구현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기능하는 데는 매한가지였다. 따라서 지금 대학위기는 대학을 좌우했던 권력들에 의해 침해받았던 ‘대학 자율화’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이런 반복된 역사를 끊어내고 자율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위기 해결의 출발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런 저자의 관점과 논의는 왜 지금까지 지식인들이 대학문제에 침묵해 왔는지, 왜 자율성의 회복이 대학위기마다 중요한 의제로 등장하게 되는지를 이해하고, 대학 문제를 둘러싼 현재의 정치동학을 분석하는 데 깊은 통찰력을 제공한다. 가히 선구적인 작업이라 할 만하다. 다만 선구적인 작업이 으레 그렇듯이,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그중에 딱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저자의 책을 읽으면 ‘대학을 좌우하려는 권력’들은 알 수 있지만 정작 대학 자체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규 혹은 비정규의 교원과 직원들, 그리고 여러 형태의 학생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대학의 고유한 사명이라 할 수 있는 ‘교육’과 ‘연구’가 시기에 따라 어떻게 사회적으로 규정되었는지, 대학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은 어떤 변천을 거듭해왔는지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작금의 대학위기가 생태적 위기라고 한다면, 대학 외부의 권력만큼이나 대학 내부 생태계에 대한 엄밀한 고찰이 절실하지 않을까? 저자의 선구적 연구가 이후 이런 연구의 촉매제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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