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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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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는 비틀거리며 걷다 넘어졌다
서평자
편상범
발행사항
374호(2018-04-18)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목차

  • 전주곡_서서 나아가기
  • 첫 번째 산책
  •     고대의 도보자들과 함께
  • 두 번째 산책
  •     동양의 도보자들과 함께
  • 간주곡_걷기와 철학적 사유 사이
  • 세 번째 산책
  •     체계적인 도보자들과 함께, 자유로운 산책자들과 함께
  • 네 번째 산책
  •     현대의 신들린 사람들과 함께
  • 후주곡_“나는 철학자로 걷는다”는 의미

    서평자

    편상범(고려대학교 철학 박사)

    서평

    나는 비틀거리며 걷다 넘어졌다

    철학은 언제나 ‘걷기 상태’에 있다. ... 이 표현은 철학이 걷기 방식과 유사한 존재 양식에 따라 이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넘어지면서, 넘어지는 걸 스스로 막으면서 무한히 반복하고 다시 시작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양식 말이다. (24p.) 
     
    이 책의 저자 드루아는 철학자의 사유를 걷기로 설명한다. 이를테면 엄밀한 방법론에 따른 추론을 구사하는 데카르트의 사유는 목적지를 향해 똑바로 천천히 정확하게 걷는 것이다. 니체의 활기찬 사유는 활기찬 걷기와 다름이 없다. 산에서 골짜기로 내려오고, 다시 골짜기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그의 걷기는 다양한 관점의 사유, 즉 관점주의적 진리관을 설명해 준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27명의 철학자를 골라, 27가지의 철학적 사유를 27가지의 걷기라고 말한다.  
     
    그런데 저자가 걷기를 비유로 삼아 철학적 사유를 흥미롭게 설명했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해다. 저자는 걷기와 생각의 관계를 단지 비유(은유)적 관계로 보지 않는다. 그는 걷기와 생각하기를 동일한 활동으로 여긴다. 어떤 점에서 걷기는 사유와 동일할까? 양자는 추락과 만회라는, 구조적으로 동일한 활동이라고 주장한다. 한 발을 내딛는 추락의 위기에서 다시 다른 발을 옮겨 균형을 유지하는 걷기의 과정은 단어와 문장을 이어 나가는 말하기의 과정, 그리고 사유의 과정과 동일하다. 
     
    저자는 이것을 자신의 매우 독창적인 발견인 듯 강조한다. 그런데 사유를 추락과 만회의 과정으로 본다는 것, 이것은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생각이 아닌가? 헤겔 변증법의 정-반-합이 바로 그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저자는 헤겔을 설명하는 장에서, 헤겔은 역사의 진행, 정신의 자기 전개를 걷기의 도식으로 이해한 천재라고 칭송한다. 마르크스의 사유는 헤겔의 이념들의 걸음을 유물론적 걸음으로 바꾼, 경제를 비롯한 삶의 구체적 토대의 걸음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마르크스에게도 역시 문제는 걷기라고 역설한다. 추락과 만회의 구조를 확인하는 것은 거기까지다. 다른 철학자들의 사유를 설명할 때에는 추락과 만회의 구조는 동원되지 않고 다양한 걷기의 방식들, 이를테면 여행, 산책, 왕복운동 등이 동원된다. 그리고 단지 걷기의 방식만이 아닌 걷는 자의 태도도 중요하다. 붓다의 중도는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걷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철학적 사유는 걷기로 설명된다. 
     
    그런데 아무리 자비의 원칙에 따라 저자를 이해하려고 해도, 나의 인색한 생각으로는, 걷기와 사유의 관계는 그저 은유적 관계일 뿐이다. 저자는 은유 이상의 동질성을 갖는다고, 그래서 생각은 걷는 것이라고 역설해도, 역설일 뿐 그것을 입증할 어떤 설명도 주지 않는다. 중첩되고 반복되고 변조되는 비유적 설명과 논리적 비약이 넘친다. 인류의 역사를 말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쓴다. “인류는 쉬지 않고 보잘것없는 곳에서 드넓은 곳에 이르기까지 계속 걸으며 이주와 침략, 전쟁과 대결, 탈출과 유배를 이어갔다.”(205쪽) 이것은 분명 진짜 걷기에 대한 설명이다. 그리고 “역사 자체도 걷는다... [인간의 이동과 함께] 걸은 것은 말, 담론, 생각, 문제, 지식, 방법, 사고방식, 학설, 물음, 믿음 등이다... 정신의 걷기는 무수한 비틀거림과 되찾은 도약으로, 숱한 방황과 탐지로 이루어졌다.”(205-206쪽) 이것은 인류의 역사, 생각의 변화 과정을 걷기에 비유한 것이다. 우리가 한 사람의 인생이나 인류의 역사를 발걸음에 빗대는 것은 아주 흔하고 진부한 비유 중 하나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비유적 표현들도 단지 비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걷기와 사유의 동일한 내적 움직임을 보여주는 근거라고 본다. 
     
    걷지 않으면 인간의 정신적 걷기도 멈추는가? 놀랍게도 저자는 그렇다고 말한다. “인류가 더 이상 걷지 않는다면... 모든 게 멈출 것이다.” “덜 걷는 인류는 덜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더 이상 역사가 없다.”(208쪽) 그래서 저자는 기계가 걷기를 대체하는 현대 문명을 매우 우려하며, 반세기 전부터 진행되어 온 이동의 전반적인 동력화와 동시에 생각의 정체가 발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저자가 이를 뒷받침하는 설득력 있는 설명을 보태지 않는 한, 이런 주장은 속단이고 논리적 비약이다. 저자가 보태는 것은 이렇다. 요즘 걷기가 다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한다. 많은 현대인들이 걷기가 실종될 가능성을 인식하고서 다시 걷기 시작했고, 걷기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했다면서 저자는 (역사의 종언을 염려하는) 우리를 안심시킨다. 
     
    몸과 마음의 긴밀한 연관성을 부인하기 어렵다면, 마찬가지로 인간의 가장 원초적 행위인 걷기 또한 인간의 사유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그 연관성의 핵심을 찾아 나선 소중한 발걸음이다. 그런데 그 걸음을 따라가기는, 적어도 내 빈약한 다리로는, 어려웠다. 나는 비틀거리며 걷다 넘어졌다. 명민한 다른 독자가 나의 손을 잡고 안내해 주기를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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