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과 2001년, 과거와 현재의 대화
“제가 공부한 역사를 바탕으로 말하자면, 백악관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위험 가운데 하나는, 집단사고에 둘러싸이게 되면서 모두가 모든 것에 동의하고 토론이나 이견이 사라지게 되는 일입니다.” - 버락 오바마, 622쪽
역사학자인 이 책의 저자, 존 다우어는 원래 일본 근대사 전공자였다. 그의 일본 연구는 그가 느낀 일본 문화의 매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책의 서문에서 그는 “그곳의 전통적인 미의식과 그 미의식 배후에 자리한 종교적 영향력”으로 인해 일본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보고자 했던 일본은 미국을 통해서 투영되었다. 특히 그가 주목했던 것은 탈냉전 이후 미국이 주도한 전쟁들이 가지고 있는 일본 전쟁과의 유사성이다.
이 책의 분석 대상은 일본이 주도한 태평양전쟁과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전쟁이다. 이 두 전쟁 사이에는 60년이라는 시간적 차이, 동아시아와 중동이라는 지역적 차이, 일본의 신도(神道)와 기독교라는 종교적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만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전쟁의 ‘문화적’ 측면이다. 전쟁의 시작과 경과,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재건하는 과정에서, 동일하지는 않지만 유사한 부분을 발견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두 전쟁으로부터 ‘공유된 믿음과 가치관, 태도, 관행으로 결합된, 서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사회들’이라는 의미에서의 ‘문화들(cultures)’을 찾고자 했다. 책의 제목에 ‘문화’(culture)가 아니라 ‘문화들’(cultures)이란 용어를 사용한 이유이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문명의 충돌’이 아니었다.
이 책은 몇 가지 키워드를 제공하면서, 이를 통해 전쟁뿐만 아니라 20세기 인류의 일상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지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전략적 멍청함(strategic imbecility), 집단사고(또는 집단 심리, psychology of herding), 성전(聖戰), 믿음 기반 사고, 체리피킹(cherry-picking)*,연통보고(stovepiping)**, 임시변통(ad hoc), 비밀주의 등이 그것이다. 두 전쟁 속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이러한 키워드들이 제시하고 있는 문화의 응축이었고, 책의 에필로그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는 단지 전쟁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인류의 일상적 삶 속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진주만 습격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지만, 미드웨이 해전에서 기념비적 패배를 당한 일본의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 五十六) 제독은 진주만 습격 후 보름이 지난 시점에 ‘일본이 적을 무찌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방심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또 일본을 얕잡아 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위험은 무시할 때 가장 먼저 찾아온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충성했던 일본은 미국의 능력을 잘못 판단했고, 이는 승리가 불가능한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전략적 멍청함과 집단사고, 체리피킹과 연통보고가 모두 뒤섞여 있는 상황이었다. 이 연장선상에서 보면 2000년대 초 미국 정부와 군의 고위 지도자들이 왜 알카에다와 이슬람주의자들이 제기하는 비대칭적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도 있다.
2001년 9.11 조사위원회 보고서의 마지막 장은 1942년 진주만과의 공명을 인정한다. “불의의 사건이 정부에 일어나는 경우, 그것은 보통 복잡하고 여러 차원에 걸쳐있는 관료제적인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는 책임의 유기도 포함되지만, 책임이 너무 부실하게 규정되거나 모호하게 위임되어 있으면 어떤 조치도 소용이 없다.” 그리고 보고서 마지막에 진주만 당시의 보고서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우리는 장래에 또 다른 위원회가 또 다른 공격에 관해 보고서를 쓰면서 이 인용문이 딱 들어맞는다고 여기게 되지 않길 바란다.” 집단사고, 믿음 기반 사고, 연통보고, 비밀주의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어쩌면 지금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관점에서 너무나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담고 있지는 않지만, 베트남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철수할 때를 다룬 미국 정부의 보고서들에도 이러한 점들이 잘 드러나고 있다. 끝으로 역사로부터 잘못된 교훈을 얻고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류의 역사를 사진으로도 보여주고 있다는 장점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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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피킹(cherry-picking)은 전체 정보 중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의도적으로 선택해 사실을 왜곡하는 행위를 뜻함. 과수원에서 덜 익거나 흠이 있는 체리는 버리고, 잘 익고 예쁜 체리만 골라 따는 모습에 빗댄 표현임.
**연통보고(stovepiping)는 정보기관이 정상적인 검토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가공되지 않은(raw) 정보를 직접 최고 결정권자에게 전달하는 비정상적인 정보 전달 방식을 뜻함. 수평적 소통 없이 수직으로만 정보가 흐르는 구조를, 연기가 위로만 빠져나가는 연통(stovepipe)에 빗대어 표현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