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시대, 배움의 본질을 되묻다
“생성형 AI는 지금 여기에 있다. 이제 AI 쓰나미가 해안으로 밀려와 우리를 덮치려 한다. 그 파도로부터 도망칠 것인지 파도를 타고 나아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나는 과감하게, 그러면서도 표류물에 부딪히지 않도록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두 발로 뛰어올라야 한다고 믿는다.” - 324쪽
이 책은 교육 분야에서 인공지능의 역할과 미래 가능성을 탐구하는 내용으로 저자인 살만 칸*은 인공지능을 단순히 인간 교사를 대체할 요소가 아닌, 교육 시스템의 질적 도약을 가능케 하는 촉매제로 바라본다. 이는 그동안 필자가 강조해왔던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존, 기술을 통한 인간의 인공적 진화라는 관점과도 연결된다.
저자는 인공지능이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는 데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말한다. 실제로 인간 교사가 수십 명의 학생 개개인을 모두 세밀히 살피는 데에는 물리적, 시간적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각 학생의 학습 패턴과 정서적 상태까지 분석하여 실시간으로 맞춤형 피드백을 제공할 수 있다. 교사는 다른 측면에서 교육을 고민하고, 학생을 바라볼 여유 시간을 얻게 되는 셈이다. 교과 과정과 학생 수의 압박하에 있던 교사에게 학생들의 창의성과 감성 지능을 살펴볼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이다.
저자는 교육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평등과 격차 해소에도 인공지능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이 충분히 보급된다면 지역이나 경제적 배경에 따른 교육의 질 차이를 크게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인공지능 기반의 학습 플랫폼은 기존의 표준화된 평가 시스템에서 벗어나 학생 개인의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을 중심으로 평가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는 지금까지 한국 교육이 가지고 있는 획일화된 경쟁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촉구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이 인공지능의 긍정적인 면만 부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생겨날 수 있는 윤리적 문제, 특히 데이터 프라이버시와 알고리즘의 편향성 문제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동시에 인공지능이 교육 환경에 도입될 때 나타날 수 있는 인간적 교류의 감소, 학생 간 상호작용의 약화, 소통 능력과 사회성 저하, 평가 방식의 과도한 정량화와 같은 문제점도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인공지능 중심의 학습 환경이 인간의 본질적인 사회적 학습 경험을 침해할 수도 있는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기도 한다.
저자인 살만 칸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인공지능을 보조적 도구로 활용하는 접근 방식을 제안한다. 인공지능이 학습을 지원하는 한편, 협동 학습, 토론, 프로젝트 기반 학습과 같은 인간 중심의 활동을 병행하여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평가 시스템에서도 정성적이고 창의적인 요소들을 균형 있게 포함하는 방안을 제안함으로써 지나친 정량화를 경계하고 있다. 즉, 교실에서 인공지능이 주가 되는 상황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이 중심이되, 물리적, 경제적 여건의 한계에서 생길 수 있는 빈틈을 인공지능으로 채워보자는 주장이다.
책은 특히 인간다움을 강조하면서도, 인공지능과 인간이 함께 성장하는 방향으로 교육이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한다. 이런 관점은 교육이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윤리적인 인간을 길러내는 과정이라는 필자의 학문적 신념과도 일치한다. 다시 말해, 인공지능의 교육적 활용은 인간 본연의 호기심과 창의력을 북돋아 주고, 기계적이고 획일적인 학습 환경에서 벗어나 개인의 다양성과 창의적 사고력을 키워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인공지능이 교육의 본질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그리고 이를 통해 학습과 창의적 탐구에서 인간이 느끼는 본래의 즐거움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변화는 단순히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는 수준을 넘어, 인간이 가진 고유의 탐구심과 창의력을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 혁명을 다룬 이 책은 교육자만이 아니라 정책 입안자, 기술 개발자, 그리고 무엇보다 자녀 교육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이 읽어볼 만하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성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희망적인 비전을 품고 싶다면 말이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아이들의 교육 차원만이 아닌, 평생학습 시대를 살아갈 ‘우리 모두를 위한 배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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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칸(Salman Khan)은 미국의 온라인 교육가로서, 2008년 세계적인 수준의 교육을 전 세계 모든 학생에게 무료로 제공한다는 사명을 지닌 비영리 교육재단 칸 아카데미를 설립함. 칸이 온라인에서 무료로 공개한 수학 및 과학 교육 동영상은 수십억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의 재단은 구글과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등으로부터 막대한 재정적 후원을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