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 대전환기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다음에 올 혼란에 대처하려면 먼저 상황이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알아야 한다. 공급망이 왜 이렇게 복잡해졌고, 왜 이렇게 확장되었으며, 왜 한 나라에 집중되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회복탄력성을 높여 사회를 보호하고자 공급망을 재구성해야 한다.” - 30쪽
코로나19 팬데믹은 세계 경제의 혈관인 글로벌 공급망의 근본적 취약성을 드러냈다. 미국의 베테랑 경제 저널리스트인 저자 피터 굿맨은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글로벌 물자 흐름이 어떻게 교란되었고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는지 깊이 있게 탐사한다. 이 책은 단순한 경제 분석서가 아니다. 미국 스타트업 글로(Glo)의 엘모 장난감 조달 사례*부터, 아시아, 유럽, 북미를 오가는 수많은 인터뷰와 현장 취재까지 구체적 사례를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문제점을 풀어낸 역작이다.
이 책이 전달하는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팬데믹 이전의 글로벌 공급망은 ‘적시생산(Just-in-Time)’이라는 효율성의 신화 위에 세워져 있었다. 재고를 줄이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면서 해외로 공급망을 이전하였으나, 결과적으로 팬데믹과 같은 거대한 외부 충격이 닥치자 글로벌 공급망은 크게 교란되었다.
포스트 팬데믹 시대 글로벌 공급망의 대전환은 현재 한국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구조적 패러다임의 변화 중 하나로, 이는 트럼프 2기 관세 전쟁이 본격적으로 가속화된 데서 기인한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으로 자유무역이 촉진되면서 선진국의 생산 거점을 중국 등 저임금 국가로 옮기는 원가 절감형 오프쇼어링이 세계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 중국 중심의 원가 절감형 오프쇼어링은 본격적인 세계화 이후 팬데믹 이전까지 수십년 간 지속되어 온 전 세계적 물가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한국 기업도 중국을 오프쇼어링 거점으로 활용하는 한편, 중국에 부품, 소재, 장비를 수출함으로써 이러한 트렌드의 주요 수혜자가 되었다. 하지만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들어서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근본적 변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포스트 팬데믹 시대 글로벌 공급망은 어떻게 진화할 것이며 한국 기업은 이러한 글로벌 공급망의 대전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이 책은 많은 사례로 공급망의 작동 방식과 공급망이 취약해진 원인,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까지 통찰력 있게 분석하고 있다. 또한 글로벌 공급망의 회복탄력성 강화를 위해 오프쇼어링 거점을 인도, 멕시코, 동남아 등으로 다변화하는 추세와 정부의 인센티브 제공 등 본국으로 공장이 유턴하는 리쇼어링 트렌드에 대해서 잘 분석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대전환으로 인해 일각에서는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세계화 시대가 저물고 탈세계화 시대가 도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미중 패권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신냉전으로 인해 국제사회가 중국과 러시아 중심의 전체주의 국가 진영과 미국, EU, 일본 등의 자유민주주의 국가 진영으로 나뉨과 동시에, 단일 시장이었던 전 세계가 블록화를 통해 부분 디커플링되면서 중국 중심의 원가 절감형 오프쇼어링은 약화되고 리쇼어링은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미국, EU 등 선진국으로의 시장접근형 오프쇼어링이 강화되고 있는 점 역시 주목해야 한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이러한 글로벌 공급망 대전환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중국 중심의 글로벌 오프쇼어링 가치사슬의 수혜자가 한국이었던 만큼 선진국 제조업의 리쇼어링과 선진국으로의 시장접근형 오프쇼어링 증가, 미중 패권전쟁으로 인한 세계 공장으로서의 중국 역할 감소와 지정학적 리스크 증대, 트럼프 2기 관세 전쟁으로 인한 무역의 퇴조는 한국에게 중대한 위협이 되고있다. 한국 기업에게는 오프쇼어링이 시장 확대를 위해서도 중요하기에 동남아, 인도 등을 새 원가 절감형 오프라인 거점으로 계속 육성하는 한편, 미국 등 주요 거점 시장에 스마트 팩토리를 건설하여 중국을 대체할 선진국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또한 한국 정부의 과도한 규제와 인건비 급등 등으로 공장이 해외로 지나치게 많이 빠져나갔기에 유턴 기업을 대상으로 한 인센티브 강화, 스마트 팩토리 육성, 규제 완화 등 기업친화적인 정책 수단을 통해 한국 기업의 리쇼어링을 유도하는 정책도 강화해야 한다.
이 책은 글로벌 공급망 위기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어 기업인, 정책 결정자, 소비자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다. 공급망 붕괴로 인해 ‘모든 것이 사라진 세계’를 다시 경험하지 않으려면, 그 원인을 제대로 직시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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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Glo)의 엘모 장난감 조달 사례는 글로벌 공급망이 추구하는 ‘적기공급 생산방식(Just-in-Time)’이 초래하는 문제점, 즉 해외에 공급망을 둠으로써 예비 부품이나 제품 보관 비용을 줄여 이윤을 높이지만, 팬데믹 등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해 작은 부품 하나라도 공급이 끊기면 전체 생산 라인이 멈출 수 있다는 취약성을 보여주는 사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