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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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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일본의 근대’를 개념화하여 ‘일본의 현재’를 우려하다
서평자 원지연 발행사항 531호(2021-06-09)

일본 근대는 무엇인가 : 정당정치, 자본주의, 식민지제국, 천황제의 형성

  • - 청구기호 : 953.6-21-1
  • - 서명 : 일본 근대는 무엇인가 : 정당정치, 자본주의, 식민지제국, 천황제의 형성
  • - 저자 : 미타니 타이치로
  • - 발행사항 : 평사리(2020-12 )

목차

서장 일본의 모델, 유럽 근대는 무엇인가?
  제1장 왜 정당정치가 성립했는가?
  제2장 왜 자본주의가 형성되었을까?
  제3장 왜, 어떻게 식민지제국이 되었는가?
  제4장 일본 근대에서 천황제는 무엇인가?
 
종장 근대의 경과로부터 일본의 장래를 생각하다

서평자

원지연(전남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히토쓰바시대학교 박사)

서평

‘일본의 근대’를 개념화하여 ‘일본의 현재’를 우려하다

일본 근대에는 한편으로 극도로 고도화된 목적합리성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일하게 극도로 강하게 자기목적화한 픽션에 바탕을 둔 비합리성이 있었습니다. … 일본 근대의 역사적 선례가 반복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의사종교적인 비합리성이 의식(儀式)과 신화를 동반하며 재생해, 그것에 봉사하는 고도로 기술적인 합리성이 함께할 가능성은 남아 있습니다. (p. 286)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근대 일본의 이미지는 메이지 유신이다. 시바 료타로의 역사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국가적 위기에 직면하여 헌신적이고 유능한 엘리트 사무라이의 주도 하에 전 국민이 “근대화”를 향해 일치단결하여 달려가는 모습’은 매력적이며 여전히 인기 있는 소재이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 일본’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이 책을 구매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일본 아마존의 독자 서평에 ‘석학의 선 굵은 논의를 기대했는데 배경과 환경의 설명에 머무르고 있지 않은가’라는 불평이 투고될 만큼 전문가가 아니라면 존재조차 모르는 방대한 인물과 구체적 사건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료가 종횡무진 등장하고 있어 쉽지 않은 책이다. 비록 저자는 후기에 ‘내용적으로 평범하다’는 겸양을 보이고 있지만 말이다.  
 
『일본 근대는 무엇인가 : 정당정치, 자본주의, 식민지제국, 천황제의 형성』은 일본을 대표하는 근대 정치외교사학자 미타니 타이치로의 역작이다. 제목부터 ‘일본 근대’를 내걸어-일본적 특수성을 중심으로 하여 근대라는 시기에 있었을 뿐인 특수한 ‘일본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근대 일본’과 구별하여- 일본이라는 장소에서 전개된 ‘근대의 이야기’임을 뚜렷이 하고 있다. 즉 이 책은 ‘일본의 근대’를 개념화하려는 시도이다. 미타니는 ‘관습의 지배’에서 ‘토의에 의한 통치’로의 변혁, ‘무역’과 ‘식민지’라는 월터 바지호트의 ‘근대’ 개념을 지표로 하여 정당정치, 자본주의, 식민지제국에 대응하여 일본의 근대를 풀어나간다. 
 
미타니는 이러한 근대의 지표가 단지 일본에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근대가 막번(幕藩)체제라는 구체제의 역사적 유산을 통해 비로소 가능했음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예를 들어 메이지 헌법 하의 의회제와 권력분립제는 막번체제 하에서 특정세력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합의제와 월번제(月番制)를 시행하는 등 ‘권력 간의 상호 억제균형의 메커니즘’에 익숙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의 ‘근대’는 유럽을 모델로 하여 극도로 고도화된 목적 합리성 하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현실적 필요를 위해 자기목적화한 픽션에 근거한 비합리성도 존재했다. 이러한 문제 속에서 제도를 움직이는 힘은 익숙한 전통의 유산이었다.  
 
근대 천황제는 바지호트의 지표에는 없는 개념이지만, 일본을 유럽적 국가로 만들고 싶었던 메이지 국가의 설계자들이 크리스트교에 해당하는 ‘국가의 기축’으로 생각해낸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적 헌법에 구속되는 ‘입헌군주’의 천황이 신민의 ‘정신적 지배자’가 될 수 있는가라는 모순에 부딪힌다. 교육칙어는 이러한 모순의 대표적 사례이다. 메이지 헌법과 교육칙어를 기초한 법제국 장관 이노우에 고와시(井上毅)는, 칙어는 정치적 명령과는 다른 천황의 저작이라는 픽션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였다. 1890년에 발표된 교육칙어는 천황의 서명 뒤에 내각총리대신 이하 국무대신의 책임을 보이는 부서(副署)를 없앴던 것이다. 이리하여 교육칙어는 헌법에 얽매이지 않고 ‘신성불가침’인 천황에 의한 절대적 규범이 되었다.  
 
이는 한 때 일본을 들끓게 만들었던 덴노 천황의 양위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2016년 헤세이 덴노는 고령이어서 공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양위를 요청하였다. 덴노에게 일체의 정치적 행위를 금하고 있는 일본의 헌법체제하에서 양위를 위한 제도적 정비를 요청하는 행위, 혹은 덴노의 공무를 본질로 인정하는 것 모두 헌법 위반의 소지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대해 우익은 물론, 우경화 속에서 헤세이 덴노가 감당해온 전후 헌법과 평화주의의 수호자로서의 역할이 있었기에 혁신진영도 지적하지 않아 논의는 발전되지 못하였다. 현재의 전후 천황제도 미타니가 지적한 근대 천황제의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근대가 막번체제의 연장선에서 발현하였듯이 일본의 현 상황도 일본 근대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중시하면서 일본 근대국민국가를 성립시킨 정치적 구심력이 누구에 의해, 왜 어떻게 이루었는지에 주목”하려는 목표 때문에 상대적으로 ‘묻혀버린 근대’의 영역이다. 이 문제는 서장에서 마르크스와 비교하여 바지호트를 선택한 저자의 의도적 선택이기는 하다. ‘토의에 의한 통치’의 시대이지만, 현실 속의 근대는 자산과 성별, (본토와 식민지라는) 공간 등을 이유로 ‘토의에 대한 참여’가 제한되었고, 이에 ‘국민’으로 인정받거나 아예 새로운 국민국가를 별도로 건설하려는 이들의 투쟁이 끊이지 않던 갈등의 공간이었다. 이들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정당정치에 대한 불만이 저자가 그토록 우려하는 ‘입헌적 독재’의 토양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 연장선에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탱했던 국제협조주의’(p.163)와 같은 표현도 1920년대의 중국의 시점에서는 걸리는 부분이다. 이러한 부분에 아쉬움을 느끼는 이들은 앤드류 고든의 『현대일본의 역사』를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