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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공민도 감수하며 찾은 한국 : '3층 서기실의 암호'
서평자
이제훈
발행사항
461 호(2018-07-31)
3층 서기실의 암호

목차

  • 머리말
  • 프롤로그 -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  
  • 1장 | 핵으로 가는 길
  • 2장 | 고난의 행군 외교
  • 3장 | 한국이 살린 북한
  • 4장 | 영국 통해 미국 견제
  • 5장 |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 6장 | 망명 전야
  • 7장 | 소년 유학생
  • 8장 | 명천 태서방
  • 9장 | 노예 해방을 위하여

    서평자

    이제훈 (서울신문 정치부 기자)

    서평

    2등 공민도 감수하며 찾은 한국 : '3층 서기실의 암호'

     북한의 베테랑 외교관인 태영호 영국주재 공사가 2016년 8월 한국으로 망명했다는 소식은 당시 외교·안보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던 나로서는 충분히 관심을 끌 만한 뉴스였다. 지금까지 탈북한 북한 외교관 중에서는 최고위급인 그는 북한에서도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이른바 성분 좋은 ‘금수저 외교관’이었기에 탈북이유가 궁금했다.  
     그의 탈북으로 본격적인 북한 붕괴론의 시작이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그가 500만 달러에 달하는 북한 지도부의 통치자금을 갖고 탈출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렇지만 국회 정보위원회 관계자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비슷한 시기에 다른 사람이 최고 지도부의 통치자금을 횡령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마침 태 전 공사의 망명과 시기가 겹치면서 그런 소문이 돌았다는 것이다. 
     아무튼 정부가 밝힌 태 전 공사의 탈북 이유 중에서 내가 주목한 부문은 자유민주 체제의 동경과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이 아니라 자녀의 장래 문제였다. 
     그런 그가 지난 5월 14일 국회에서 ‘3층 서기실의 암호-태영호 증언’이라는 제목의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마침 남북관계가 급변하는데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어서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 현장에 직접 찾아갔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김정은 체제를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리 쇼맨십에 능하다고 강조했다.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보인 그의 소탈한 이미지는 일종의 쇼맨십이라는 것이 태 전 공사의 생각이었다. 그는 김 국무위원장의 성격이 급하고 즉흥적이며 거칠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자라양식 공장에서 새끼 자라가 죽은 것을 보고 지배인을 심하게 질책하고 처형까지 지시했다는 것이다. 
     북한 최고 지도부에 대한 태 전 공사의 거침없는 비판은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 고위급 회담을 앞둔 북한을 자극했던 모양이다. 출판기념회가 열린 다음 날 북한은 이례적으로 태 전 공사의 이름은 적시하지 않고 “천하의 인간쓰레기들까지 국회 마당에 내세워 우리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헐뜯고 선언을 비방 중상하는 놀음도 버젓이 감행하고 있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렇듯 북한 체제에 혹독하게 비판했지만 사실 그는 자서전에 가까운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로 현 북한 사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고 밝혔다(503쪽). 
     즉 한국에서 북한을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과 결부해 들여다보다 보니 제대로 북한을 이해하지 못한 채 대북 정책도 좌익과 우익, 보수와 진보로 갈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다는 얘기다. 
     그는 최근 남북관계의 진전으로 우리 사회에 거론되는 통일에 대한 언급이 잦아지고 있지만 자신만의 현실적 고민을 화두로 던진다. 한반도 통일을 도덕적 기준으로 인간의 보편적 권리와 존엄을 되찾기 위한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런 생각은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는 김정은 체제의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내려고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의 최신 인기 드라마나 영화가 DVD나 USB형태로 몇 주 안에 북한 장마당에 들어가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미디어 매체가 필요한 것은 북한 주민의 생활이 윤택해져서가 아니라 10여 년 전부터 전력사정이 악화돼 TV를 마음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TV를 대체할 영상물이 필요한 상황에서 중국 업체가 12볼트 배터리로 DVD나 USB를 재생하는 미디어플레이어 ‘노텔(NOTEL)’을 생산해서 보급하고 이 미디어 플레이어가 전기를 많이 사용하지 않고 저렴하기 때문에 이를 갖고 한국 문화를 소비한다는 얘기다. 
     그는 통일 자체보다도 통일 후 북한 내에서 어떻게 계층 간 화해를 이룰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책에 담았다. 김정은 정권이 붕괴돼도 핵심계층이나 지도부 인사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부단히 알려야만 통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때문인지 그는 한국사회가 탈북민을 ‘통일민’으로 불러주시길 바란다고 적었다. 
     자기 자신도 한국에 들어온 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라 제빵과 관련된 책을 모았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이민 1세대로 비유하고 2등 공민으로 분류된다고 적었다. 자기 자신이 2등 공민이 되더라도 교육을 위해 같이 온 두 아들이 자유를 갖고 잘 살 수 있다면 이를 감내하겠다고 했다. 자유를 찾아 한국에 정착한 수많은 탈북민이 한국의 현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방황하거나 심지어 다른 나라로 이민까지 가는 현실을 ‘2등 공민’으로 비유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촉구한 셈이다. 
     북한에서 잘 나가는 금수저였던 그가 책에서 마지막으로 언급한 것은 자신의 발로 다시 평양을 찾는 것이었다. 자신을 혈육처럼 돌봐준 외무성 직원과 만나 용서를 구하는 한편 서울에서 버스를 한 대 빌려 친척 아이들을 모두 데려와 한국에서 교육하고 싶단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자신만이 자유를 누린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 마음의 짐을 조금 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함경북도 명천에 있는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신 부모님과 자신도 ‘태씨 성산’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북한체제를 비판하면서도 북한의 엘리트코스를 밟으며 북한이 처한 모순에 대한 고민을 담아냈다. 태 전 공사의 고민은 현재 북한 외교관이나 엘리트들이 고민하고 있는 현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다만 일부 상황은 다소 과장됐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국정원 사정에 정통한 한 국회의원은 “태 전 공사의 책 중에서 일부는 사실 관계가 맞지 않는 것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의 주장을 모두 믿기 보다는 일부는 좀 걸러서 생각해볼 부분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이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더라도 태 전 공사의 절절한 외침은 충분히 기억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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