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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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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붓이 바라본 칼의 세상
서평자
고재열
발행사항
466 호(2019-01-31)
선비, 사무라이 사회를 관찰하다

목차

  • 1. 이 책의 과제 / 2. 이 책의 내용과 구성 / 3. 선행연구의 문제점과 이 책의 특징
  •  
  • 제1장 삶과 죽음
  • 1. ‘호생오사’와 ‘낙사오생’ / 2. 죽음이 일상화된 사회 / 3. ‘경생’에서 ‘호생’으로
  •  
  • 제2장 원한
  • 1. 토요또미 히데요시를 원망하는 일본인 / 2. 과거를 뉘우치는 일본인 / 3. ‘구세복수’와 ‘와신상담’
  •  
  • 제3장 제도
  • 1. 병농분리 사회를 관찰하다 / 2. 양민과 양병 / 3. 신분제에 대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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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장 통치법
  • 1. 어떻게 평화가 유지되는가? / 2. 세습되지 않는 관직 / 3. 구임제와 세습제
  •  
  • 제5장 사치와 번영
  • 1. 풍요로운 사회 / 2. 검소한 생활 / 3. 나가사끼에 대한 관심과 조선의 해외통상론
  •  
  • 제6장 기술
  • 1. ‘천하일’과 일본의 기술문화 / 2. 건축과 도량형 / 3. 조선술
  •  
  • 제7장 문자생활
  • 1. ‘카나(?名)’와 일본식 한자 / 2. 한자와 한문의 사용 / 3. 훈독법과 한문직독법
  •  
  • 제8장 문풍
  • 1. 한시 수창을 둘러싼 갈등 / 2. 오규우 소라이 숭배와 일본의 문운 / 3. 타끼 카꾸다이와의 만남
  •  
  • 제9장 교류
  • 1. 계미년의 문학교류 / 2. 교감과 유대의식 / 3. ‘동문세계’에의 꿈
  •  
  • 제10장 문화와 풍속
  • 1. 신불숭배 / 2. 유풍에 대한 평가 / 3. 일본의 유교화와 동아시아의 평화
  •  
  •     결론 위화감과 대화하며 공존하다

    서평자

    고재열 (시사IN기자)

    서평

    붓이 바라본 칼의 세상

    2015년, 주강현 제주대학교 석좌교수(현 국립해양박물관 관장)와 메이지유신 기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취지는 간단했다. ‘조선은 왜 망했는가’에 대한 답을 ‘일본은 왜 흥했는가’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찾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메이지유신의 토대가 된 삿초 동맹의 두 축 사쓰마 번(지금의 가고시마 현)과 조슈 번(지금의 야마구치 현) 그리고 일본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통로였던 나가사키현의 데지마를 찾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야마구치 현의 하기 시에 있는 쇼카손주쿠 학숙이었다. 한·일합병의 주역인 조선 공사(이노우에 가오루와 미우라 고로), 통감(이토 히로부미와 소네 아라스케), 주차군사령관(야마가타 아리토모와 하세가와 요시미치), 총독(데라우치 마사다케)은 물론, 내각총리(가쓰라 다로) 등이 모두 쇼카손주쿠 학숙 출신이었기 때문이다(이후 하기 시에서는 5명의 일본 총리가 나왔다).  
    아이러니한 것은 하기 시가 백제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도시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메이지유신 기행을 통해서 우리가 일본을 가르쳤던 스승의 나라라고 자위하는 것이 얼마나 짧은 식견인지 알게 되었다. 우리가 전달한 것이 초등학교 과정이라면 그들은 중국으로부터 중학교 과정을 네델란드로부터 고등학교 과정을 그리고 미국 등 서구열강으로부터 대학 과정을 마친 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은 스승의 나라와 모두 전쟁을 벌였다.  
    『선비, 사무라이 사회를 관찰하다』를 읽고 가장 와 닿았던 구절은 “일본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문제는 자아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연결된다”라는 말이었다. 일본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느냐 없느냐 여부는 바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허위의식과 진정성을 가르는 부분과 맞닿아 있었다. 저자는 1590년부터 1764년까지 170년 동안 쓰인 일본 견문기 35종을 살펴 일본에 대한 조선 선비의 냉정한 기록을 발굴했다.  
    조선은 붓으로 지배하는 사회였고, 일본은 칼로 지배하는 사회였다. 붓이 지배하는 사회의 선비들에게 칼이 지배하는 사회의 작동 원리는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었다. 특히 당파 싸움에 이골이 난 조선 선비들에게 사회 구성원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고 동원하는 데 능한 일본 막부의 통치술은 중요한 분석 대상이었다. ‘우월한 유교문명의 전파자’ 조선이 ‘선진문물의 수용자’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한 사회의 작동원리를 탐구하려는 문명 탐험가의 시선이었다.  
    조선의 임금에 해당하는 천황은 실권이 없고, 쇼군이 통치를 하는데 지방관을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다이묘가 세습을 함에도 불구하고 권력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비결에 주목했다. 다이묘들이 에도에 와서 부역하는 ‘참근교대’와 대를 이어 관직을 세습하게 해서 안정을 꾀한 것, 신분제가 깊이 뿌리내려 ‘조금도 분수에 넘치는 일을 바라지 않는 마음’이 자리잡힌 것이 비결로 꼽혔다.  
    조선 선비들은 일본의 무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며, 유지되는 시스템이 무엇인지 꼼꼼하게 기록했다. 정유재란 때 포로가 되어 3년 동안 억류되었던 강항이 쓴 「간양록」이 대표적이다. 그는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사람이나 만물이나 같은 법인데, 일본 사람들은 어째서 죽음을 즐기고 삶을 싫어하는가’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사무라이 사회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일본 사회에 대한 정밀한 관찰은 조선 사회의 개혁 담론으로 이어졌다. 일본이 나가사키에서 네델란드와 교역하며 선진문물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고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통상 개방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일본의 조선술이 임진왜란 때에 비교해 괄목상대할 만큼 발전한 것을 보고는 조선술의 발전을 도모하자고도 했다.  
    이 책을 읽은 뒤에는 『상투를 자른 사무라이』(이광훈, 2011)를 이어서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조선의 선비들이 일본 사회를 면밀히 관찰하고 조선 개혁에 대한 의제까지 던졌지만 조선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가 되는 것이었다. 쇼카손주쿠에서 동문수학 하던 조슈 번의 사무라이들이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과정은 조그만 스타트업이 초국적기업이 되는 과정을 방불케 한다. 이 과정 역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불편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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