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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인공지능 논의가 불러온 질문, “인간이란 무엇인가?”
서평자
남형두
발행사항
414호(2019-01-30)
인공지능과 새로운 규범

목차

  • 서론 - 정원섭
  •  
  • 1장 인공지능의 출현과 인간 사회의 변동 - 백종현
  •  
  • 2장 인간과 인공지능의 미래: 인간과 인공지능의 존재론 - 박찬국
  •  
  • 3장 성찰적 인공지능 - 박충식
  •  
  • 4장 교감의 삶: 소셜로봇 시대에 인공 감정과 인간 감정 - 박신화
  •  
  • 5장 루프 속의 프레카리아트: 인공지능 속 인간 노동과 기술정치 - 하대청
  •  
  • 6장 인공지능 시대의 과학기술 거버넌스 - 손화철
  •  
  • 7장 인공지능 윤리의 방향 - 정원섭

    서평자

    남형두(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학 박사)

    서평

    인공지능 논의가 불러온 질문, “인간이란 무엇인가?”

    과연 인공지능이 일종의 인간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도덕적 또는 법적 행위자로 볼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의 실마리는 ‘인공지능이 무엇인가?’라는 물음보다는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답에서 찾는 편이 수월할 것이다. (37p.) 
     
    인간과 인공지능의 존재론적 성격을 고찰하려는 논의에서 많은 사람이 인공지능을 통해서 인간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에 반하여 나는 오히려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실마리로 하여 인공지능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91p.)
     
     
    2016년 이세돌 기사와 알파고의 세계적 대국은 바둑을 둘 줄 모르는 사람까지 TV 앞으로 모이게 했다. 초반 이세돌이 압승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무너지고 내리 3패를 당한 이세돌이 겨우 한 판을 이기자 마치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긴 것인 양 TV로 대국을 본 국민들은 인류애로 하나가 되는 착각마저 들게 되었다. 대국이 진행된 일주일 남짓 기간은 인공지능의 위력과 공포를 절감하게 했다. 
     
    인공지능이 결코 인간처럼 될 수 없다거나 인간과 같아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거나 이미 인간을 넘어섰다는 등 논의가 활발하다. 이에서 보듯 인공지능의 수준을 말할 때 인간이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런데 기준으로 설정된 인간의 어떤 점이 비교 대상인지, 나아가 인간이 무엇인지에 따라 답은 달라질 수 있다. 이 책의 제1장에서, 칸트 철학의 최고 전문가인 백종현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칸트 철학으로 조명하고 이를 인공지능에 대입한다. 자연적 경향성을 거스를 수 있는 자유의지는 인간의 속성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옳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실천 이성을 갖는 인간은 자신의 행위의 결과에 대해 과실과 책임의 귀속 주체가 될 수 있다. 나아가 합목적성, 미적 감정, 사회성, 문화 활동을 인간의 속성으로 볼 때 인공지능에 법적 주체가 될 수 있는 인격을 부여하기는 어렵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유럽과 우리나라 일각에서는 자연인 외에 법인에 인격이 부여되었던 전례를 들어 인공지능에도 법적 인격을 부여할 수 있다는 주장이 비등하다. 그러나 백종현은 법인의 의사결정은 결국 자연인이 하고 법적 효과가 궁극적으로 법인을 구성하는 자연인에게 귀속하는 데 반해, 인공지능의 경우 의사결정이나 행위를 인공지능 시스템 자신이 한다는 점에서 법인과 법인격의 논의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제2장에서 박찬국은 인공지능을 존재론에서 접근한다. 인간, 인간 정신을 유물론, 환원주의 시각으로 파악하는 것을 배격하되 인공지능을 인간 중심, 인간 기준으로 논의하는 것 또한 반대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을 이해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박찬국은 백종현과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지만, 동물, 인간, 인공지능의 존재론적 차이를 분석함으로써 인간이 반드시 동물보다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인간에게 있는 감정이나 욕망이 인간만이 갖는 장점인가라는 의문 제기와 함께 인공지능이 이와 같은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을 모델로 발전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윤리나 규범은 불완전하고 조절메커니즘이 필요한 존재인 인간에게나 요구되는 것이라고 함으로써 이런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 인공지능에는 독자적인 존재 방식이 필요하다고 한다. 박찬국은 불완전한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보다는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차라리 완전한 신을 닮은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이 낫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물론 인공지능을 선하면서 전능한 존재인 신적 존재로 만드는 것이 가능할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지만. 인공지능의 자체적인 진화에 따라 인공지능이 독자적인 욕망과 목적을 가질 때를 진정 위험한 단계로 보며 박찬국은 이런 일이 절대로 발생하지 않는 방향으로 인공지능을 개발해야 한다는 당위론으로 논의를 끝맺고 있다. 
     
    백종현, 박찬국 외 박충식(성찰적 인공지능), 박신화(교감의 삶: 소셜로봇 시대에 인공 감정과 인간 감정), 하대청(루프 속의 프레카리아트: 인공지능 속 인간 노동과 기술정치), 손화철(인공지능 시대의 과학기술 거버넌스), 정원섭(인공지능 윤리의 방향)의 글은 앞의 두 개의 논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글로서 인공지능과 새로운 규범에 관한 각론 성격이라 할 수 있다. 
     
    인공지능에 관한 과도한 낙관론과 비관론이 극단적으로 갈린 오늘날,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 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기술은 혁신을 넘어 이전 기술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파괴적이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은 그 기술이 현실이 되었을 때 이에 대한 규범을 논의한다면 이미 논의의 대상이 된 기술은 과거의 것이 되어 버릴 정도로 규범이 기술을 따라잡기란 난망이다. 그 점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현실화되지 않은 상태라도 미래에 도달할 기술을 전제로 규제와 규범을 논의하는 것은 결코 성급한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리스 철학 이래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이렇게 같은 대상을 가지고 대화하고 논의한 적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모든 학문의 관심이 인공지능을 향할 때,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인공지능과 새로운 규범을 논의한 이 책은 매우 시의적절해 보인다.  
     
    앞의 두 편 논문과 뒤의 다섯 편 논문이 원론과 각론의 성격으로 구분될 수 있지만, 규범의 보다 구체화된 논의, 즉 법적 논의가 깊이 있게 다루어지지 않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한국포스트휴먼연구소 등 세 기관이 시리즈 형식으로 내는 <인공지능과 포스트휴먼 사회의 규범> 총서의 다음 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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