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중심의 의료체계를 극복해야 건강한 미래가 있다!
“의료재난은 왜 생기는 것일까? 이제 우리는 문제의 원인을 명확히 분석하고 그 해결방안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의료재난은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 부족에서 기인한다.” - 13쪽
3인의 의료 종사자들이 집필한 이 책은 1년 넘게 지속하고 있는 의과대학 정원 증원사태로 인해 고통받고 지쳐가는 시민들에게 의정 갈등 이면에 존재하는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을 돕는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큰 책이다. 저자들은 현재의 의정 갈등이 시장 중심의 의료서비스 공급구조에 기반하고 있으며, 현 사태가 단순히 의과대학 정원 조정과 합의로 봉합될 문제가 아니라 시장화된 의료서비스 공급구조를 공공화하는 등 보다 근본적인 개혁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다.
책은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먼저 1장에서 저자들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코로나19 팬데믹이 한국 의료계의 역량을 보여준 계기가 아닌, 오히려 그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에 기반해 다시 반복될 것으로 예상되는 신종 감염병의 위기 상황에서는 방역만으로는 공중보건의 위기를 막아내기 어렵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민간병원보다 열악한 공공병원이 코로나19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그 역량이 더 취약해져 버린 상황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더 심각한 의료재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한다.
2장에서는 의료재난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시장 중심의 의료서비스 공급구조가 우리 국민의 삶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공공성을 띄어야 할 보건의료서비스가 영리적인 목적으로 제공됨으로써 구매력이 큰 도시 지역과 그렇지 않은 농어촌 지역 간에 의료 자원 분포에서의 불평등이 발생하고, 그 결과로 도시와 농촌 간 건강 격차가 커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방식의 의료서비스 공급구조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해방 이후 지금까지 공공성이 강한 보건의료서비스를 시장에 맡겨 버린 결과라는 사실을 3장에서 통사적으로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들은 응급실 뺑뺑이 사태와 같은 병리 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 상황을 역전시키지 않으면 향후 다양한 분야에서 대형 의료재난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의료서비스의 공공성 강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하게 요구됨을 피력한다. 그리고 그러한 패러다임 전환의 핵심적 가치이자 수단으로 ‘공공의료서비스 강화’를 역설하고 있다. 진료권역별로 공공병원을 대대적으로 확충하여 의료서비스 공급구조 재편의 지렛대로 삼지 않는다면 의료서비스의 공공성은 자동으로 달성되지 않음을 강조한다. 이와 더불어 의료서비스 전달체계의 혁신 및 국민 참여 기반 의료시스템의 재구축을 통해 모든 국민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평등하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국민이 의료계를 불신하고 가계의 부담만 경험하는 시대, 정작 필요한 서비스는 공급되지 않은 채 불필요한 서비스가 과잉 공급되는 시대, 지역 간 의료 불평등이 지역 소멸의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시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정도로 의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그 결과 의료시스템이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된 시대에 대하여 엄중한 경고를 던지고 있다. 그러나 암울한 시대에 대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공공의료서비스 강화’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공공의료서비스 강화’가 현재의 시장화된 공급구조를 재편하여 의료서비스의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한 정부의 핵심적인 정책이자 시대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피력하고 있다. 다만, 지역에 공공의료서비스를 확충하기 위한 노력과 현 보건의료체계 내에서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 채 과잉 공급된 민간병원의 병상을 줄이는 노력이 함께 고민될 필요가 있다. 또한 공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민간병원 역시 자본 비용에 대한 공적인 투자를 강화함으로써 사회적이면서 공적인 규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계획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민간 부문이 지배적인 현재의 의료서비스 공급구조하에서 전반적인 의료서비스의 공공성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작은 틈이 이 책의 의의를 반감시키지 않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