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매디슨 : 노아 펠드먼의 새로운 해석이 한국 정당정치에 주는 함의
" ‘당파(party)’와 ‘파벌(faction)’...두 단어 모두 공익에 앞서 소속 집단의 특정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을 일컬었다. ... ‘파벌’은 공익으로부터 일탈을 의미하는 금기어였다. 반면 ‘당파’는 그렇지 않다. ... 새롭게 대두되는 정치 개념 속에서는, 공화파 같은 당파가 정치적 반대자들과 격전을 벌일 때조차도 전체 인민의 진정한 가치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었다."
- 2권(정당) 731쪽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에 관한 연구는 오랫동안 ‘헌법의 아버지’라는 신화적 인물론 중심이었다. 전통적 연구들은〈연방주의자〉논설과 헌법 제정 과정에서의 그의 기여에 초점을 맞춰왔다. 이 책은 그러한 전통적인 단면적 해석을 넘어 매디슨을 천재적인 ‘헌법 이론가’, 당파 인으로서의 ‘정당 지도자’, 대통령으로서의 ‘국가 지도자’라는 세 가지 역할의 통합적 관점으로 매디슨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저자의 가장 중요한 기여는 매디슨의 이론과 실천 사이의 역설적 관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이다.
매디슨은 파벌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결국 해밀턴을 비롯한 연방주의자들에 맞서 제퍼슨과 함께 민주공화당을 창당하며 미국 정당정치의 출발점을 마련하였다. 이는 이론가로서의 우려와 현실 정치인으로서의 실용적 판단이 만들어낸 창조적 긴장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매디슨의 복합성을 통해 현대 민주주의 위기와의 연결고리를 찾아낸 것이다. 특히 ‘매디슨 시대의 파벌주의와 오늘날의 파벌주의 사이의 유사성’을 통해 매디슨의 통찰이 지금도 유효함을 보여준다.
‘매디슨의 정당 이해’의 첫 출발은 ‘파벌의 필연성에 대한 인식’이다. *〈연방주의자〉논설 10번(Federalist No. 10)에서 그는 파벌의 잠재적 원인은 인간의 본성에 뿌리내려져 있다.라고 명시했다. 파벌을 제거할 수는 없지만, 그 폐해는 제도적 설계를 통해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핵심 논리였다. 특히 ‘다수의 폭정에 대한 우려’는 매디슨 정치철학의 핵심이다. 소규모 직접민주주의에서는 다수 파벌이 쉽게 형성되어 소수를 억압할 위험이 크지만, 대의제 공화정과 확장된 연방 국가에서는 다양한 이익집단들이 존재하여 특정 파벌의 지배를 방지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매디슨은 세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첫째,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 체계를 통한 권력 분산이다. "야심은 야심으로 견제되어야 한다."라는 그의 원칙은 제도적 차원에서 권력 집중을 방지하는 메커니즘이다. 둘째, "확장된 공화국" 이론이다. 매디슨은 "영역을 확장하면 더 다양한 정당과 이익집단을 포함하게 되어, 전체 다수가 다른 시민들의 권리를 침해할 공통된 동기를 가질 가능성이 줄어든다."라고 주장했으며 이는 현대 다원주의 민주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셋째, "다원주의적 경쟁"의 중요성이다. 복수의 정당과 이익집단 간의 경쟁이 단일 집단의 전횡을 방지하고 정치적 안정성을 높인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매디슨의 통찰’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당정치에 중요한 함의를 제공한다. 한국은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 집중과 문제해결 능력, 나아가 정치적 리더십 부재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정당의 실패’가 근본 원인이다.
‘매디슨의 통찰’은 ‘당내 민주주의 강화’를 강조한다. 첫째, 소수 엘리트 중심의 권위주의적 정당 운영에서 벗어나 당원과 시민의 실질적 참여가 보장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극단주의에 대한 견제 기능이 필요하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공동 집필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정당의 ‘게이트 키핑(gate keeping)’기능, 즉 민주적 규범을 위협하는 후보를 걸러내는 역할이 중요하다. 상호 관용과 제도적 권한 절제라는 비공식적 규범을 유지하는 것이 민주주의 지속의 핵심인 것이다. 셋째, 정책 중심의 정당정치로의 전환이다. 인물과 정파 중심의 정치에서 벗어나 정책과 비전을 중심으로 한 정당 운영이 필요하다. 넷째, 선거제도 개혁을 통한 ‘다당제 정치’이다. 매디슨이 강조한 다원주의적 경쟁 원리의 실현으로 다양한 집단과 의견이 정치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동시에 당내 경선 과정의 민주화, 정당 내 파벌 활동의 공식화와 투명화, 정당 공천 과정의 민주화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
‘매디슨의 정당 이해’가 한국 정치에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파벌(정당)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되, 이를 민주주의 강화의 한 방편으로 기능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당 간 견제와 균형’과 ‘당내 민주주의’ 그리고 ‘다원적 경쟁’을 통해 민주주의의 질을 높이는 것이 매디슨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의 핵심이다. 매디슨의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한국 정당정치 발전을 위한 소중한 나침반 역할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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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주의자〉논설 10번은 1787년 11월 23일에 게재된 제임스 매디슨의 첫 기고문으로 ‘파벌’ 문제의 폐해에 대한 해법으로 더 큰 공화국으로의 확장과 대표제를 제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