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교정책의 성패 : 비전, 합의, 역량의 산물
“미국은 대전략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경제를 바로 세우고, 정치를 바로 세우고, 안정적이고 목적의식적이며 중도적인 리더십을 확보하는 동시에 전 세계 많은 사람이 본받고 싶어 하는 그런 국가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 152쪽
미국 외교는 왜 실패하는가는 필자가 주관한 미국 외교정책 관련 강좌를 한데 묶어 편집한 것이다. 강연 주제는 ‘한반도 정세, 미국 외교정책의 이론적 논쟁, 미국 외교의 주요 쟁점’ 등 세 가지이며, 각 장은 해당 주제에 대한 석학과 전문가들의 강연, 필자와의 대화, 청중과의 질의응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은 국제정치 이론으로 책의 도입부를 구성하여 독자들을 압도하는 여느 학술서와는 달리, 접근성과 가독성을 높여 책의 매력을 한층 부각시킨다.
이 책은 미국 외교정책 관련 대표적인 대중서이다. 미국 외교·안보 분야 권위자들의 강연과 질의응답을 통해 미국 외교에 대한 손쉬운 접근과 이해, 그리고 통찰력을 제공한다. 국제정세와 미국 외교라는 딱딱하고 어려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책을 읽어 내려감에 있어 막히는 부분이 거의 없고, 강좌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통찰력을 충실히 흡수할 수 있다.
미국 외교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이 책의 제목은 전 세계를 호령해 온 미국 외교의 현실과 한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을 다루는 1부는 과거 북미 협상의 경험을 통해 미국의 정책 실패를 분석하고 향후 미국의 대북 외교 전략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미국 외교정책의 이론적 논쟁을 조명하는 2부에서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측면에서 미국 외교정책의 성공을 위한 이론적 대안을 모색한다. 미국 외교의 주요 쟁점을 다루는 3부에서는 미·중 간 전략적 경쟁, 우크라이나-가자 사태, 경제 안보, 인도-태평양 전략, 기후변화 등 현재 미국이 직면한 주요 이슈들에 관한 심도 있는 분석을 통해 미국 외교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해결책을 고민한다.
이 책은 국내정치적 이해관계와 대내적 역량이 미국의 외교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에 주목한다. 찰스 쿱찬 교수는 미국 외교정책이 시기별로 고립주의, 현실주의, 이상주의 등 주요 외교 노선 간의 충돌로 인해 굴곡을 경험했으며, 특히 국내정치적 변화와 정파 간 갈등으로 인해 외교정책의 일관성이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또한 국제문제에 대한 지나친 개입이 불러온 미국 중산층의 공동화와 막대한 비용 투입에도 불구하고 초라하게 막을 내린 중동 전쟁은 미국 유권자들의 실망과 피로감을 증폭시켰으며, 이러한 정책적 실패가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에 기여했다고 분석한다. 그는 미국의 외교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제정치의 현실 변화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한 실용적 현실주의 중심으로 국민적 합의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미국 외교는 왜 실패하는가를 통해 미국 외교·안보 분야의 석학들은 미국의 패권적 지위가 건재함을 인정하면서도 미국이 국제사회의 존경받는 리더로서 작금의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국제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미래 비전의 설정, 대내적 역량 확충, 이념적 경직성 탈피, 정치 양극화의 완화, 신중하고 겸손한 태도’를 지닐 것을 제안한다. 즉 미국의 리더십을 재창출하기 위해서는 집 안 정리를 잘하고 국력을 배양하는 한편 공존과 포용을 지향하는 미래 비전을 통해 전 세계가 본받고 싶어 하는 국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석학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재등장으로 인해 미국의 리더십 재창출 가능성이 보다 희박해졌다고 진단한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슬로건과 민족주의 정치에 뿌리를 둔 미국 우선주의는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안보 공약을 축소하고, 다자 경제, 개발 협력, 환경, 보건, 인권 등 제반 분야에 걸친 미국의 리더십을 약화시킬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 외교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트럼프 시대를 거치며 미국이 전 세계를 아우르는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정치적 합의와 국력 배양에 있어 의미 있는 진전을 거둘 수 있는지의 여부는 향후 미국 리더십의 향배를 결정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