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력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이다
“우리가 어떤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지는 우리의 민주주의와 문화의 향방을 결정하는 데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 323쪽
미국의 방송 진행자이자 작가인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의 주의력이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위협받고 있는지 추적하고, 이런 위협이 사회 전체적으로 어떤 심각한 결과를 낳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인류학, 철학, 심리학과 사회학 등을 넘나들면서 주의력이 인간 삶에서 얼마나 중심적인지 설명하고, 무엇에 주의를 기울일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현재의 미디어 환경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주의 집중력이 디지털 기기와 미디어의 성장 속에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점은 그동안 많은 저자들이 해온 지적이지만, 이 책은 몇 가지 점에서 흥미롭다. 첫째, 케이블 TV에서 방송을 오랫동안 진행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는 사람들의 주의력을 활용하고 추출해 상품화하는 것은 소셜 미디어 시대의 특성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시도라는 점을 주장한다. 저자는 TV가 시청자의 주의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기술과 노력을 기울이는지 내부자의 시선으로 보여주면서, 잡지와 라디오, TV 등 미디어의 탄생과 성장은 이런 주의력 상품화의 역사였다고 말한다. 지금의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기기는 이런 역사의 연장선 위에 있으면서도 사용자에게 맞춤화되고 기술적으로 훨씬 정교화된 결과로 본 것이다.
둘째, 저자는 주의력이 상품이 되고 레거시 미디어, 소셜 미디어 그리고 온라인 인플루언서 등이 우리의 주의력을 확보하려고 끝없이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공론장이 붕괴되고 민주주의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1858년 미국 상원의원 선거에 나선 두 후보,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과 스티븐 A. 더글러스(Stephen A. Douglas)가 벌인 토론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이때와 비교할 때 지금의 선거 토론과 공론장이 얼마나 축소되고 왜곡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현대 공론장에서 우리의 주의가 잘 흘러가도록 조정하고 유지하는 ‘주의력 레짐’이 붕괴됐으며, 주의력 독점을 위한 경쟁과 욕구만 남았다고 본다. 이런 규칙도 제도도 없는 주의력 쟁탈전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로 도널드 J. 트럼프(Donald J. Trump)를 꼽는다. 그는 토론을 통한 설득을 포기하고 대중에게 더 많은 관심을 받고 분노를 유발하는 것을 전략으로 삼아 미국의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저자는 주의력의 상품화가 이렇게 극단화되면 사람들은 이런 추세를 통제하고 대안을 찾아낼 것이라고 말한다. 편리한 스트리밍 서비스가 있는데도 LP 음반이 부상하고, 곧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종이신문과 종이책이 살아남는 것은, 주의력 자본주의가 가져오는 소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소셜 미디어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주의를 기울일 대상을 결정하는 주체성을 가치 있게 여기며, 대안적인 주의력 상품을 취급하는 새로운 시장을 계속 찾아가고 있다. 연결과 유대감을 추구하지만 알고리즘과 광고가 없는 메신저 ‘시그널’이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주의력 자본주의의 폐해가 심각해지면서 플랫폼 규제에 관한 생각도 바뀌고 있다. 19세기 자본주의에서 아동노동 금지와 노동시간 단축은 비상식적인 조치였지만 지금은 인권 보호를 위해 필수적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주의력을 추출해 상품화하는 플랫폼 규제도 앞으로 비슷한 경로를 거칠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플랫폼 규제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내년부터 초·중·고등학교 수업 중 휴대폰 사용이 금지된다. 예전 같으면 학생 인권 침해 논란도 있었겠지만, 디지털 기기가 어린 학생들의 학습 능력과 정신건강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가 국민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으면서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는 이 법은 큰 논쟁 없이 통과되었다.
저자는 주의력에 관한 방대한 연구를 능숙하게 소화해 독자들이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주의력의 가치를 음미하고 현재의 미디어 환경을 비판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지나친 일반화가 아닐까 하는 대목이 없지는 않지만, 주의력을 둘러싼 현재의 미디어 환경이 민주주의 위기의 한 원인이라는 점은 현재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떠올리다 보면 곱씹어야 할 대목인 것 같다. 주의력의 위기가 곧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저자의 주장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