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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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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빈곤할 수밖에 없었던 가족에 대한 서사적 분석
서평자
김인경
발행사항
501호(2020-10-28)
하틀랜드 :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뼈 빠지게 일하고 쫄딱 망하는 삶에 관하여

목차

  • 1장 지갑 안 동전 한 푼
  • 2장 가난한 여자의 몸
  • 3장 밀밭 사이 끝없는 자갈길
  • 4장 나라가 부과하는 수치
  • 5장 지붕이 새는 집
  • 6장 노동 계급 여성
  • 7장 나의 출신지

    서평자

    김인경(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Texas at Austin 대학교 경제학 박사)

    서평

    빈곤할 수밖에 없었던 가족에 대한 서사적 분석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두고 그렇게 쉽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다는 걸 우리 식구들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거야.” (p. 240)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고 고난을 지속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다면 이는 개인만의 잘못일까? 그러한 어려움에 처한 가족에서 자란 아이가 빈곤과 불행의 굴레에서 벗어나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이 책은 사회경제적 이슈와 공공정책에 관한 저명한 칼럼니스트이자 하버드대학 행정대학원 교수인 저자가 4대에 걸친 가족사를 세세하게 정리한 회고록이다. 대공황, 태풍피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금융위기, 의료비 상승, 세척 용제 회사에서의 화학약품 중독, 가족 유형과 저숙련 근로자에 대한 편견 등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불합리를 경험한 가족이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나락을 경험하면서도 무덤덤하게 살아내는 모습을 그렸다. 미국 사회에서 백인임에도 빈곤층에 속했기에 백인 주류의 사회적 관심밖에 속했다는 저자는 10대 임신, 흡연, 알코올, 약물 중독, 도박, 잦은 이혼, 가정폭력, 아동학대, 빈곤, 정신병 등 총체적인 난관을 경험한 부모와 조부모 곁에서 자라며 어린 시절 안전한 주거환경과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깊은 갈망을 내보인다. 
     
    우리는 경기 불황, 협소한 사회보장제도, 사회적 부조리 등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비롯된 개인의 불행을 때로는 무심히 표면적으로 건네 듣곤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여건이 한 가족의 삶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피폐화시키는지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준다. 그럼으로써 평범하게 생업에 충실한 사람들이 부정적인 사회경제적 충격에 갑작스럽게 노출된다면 그들을 보호할 사회보장제도가 촘촘히 그리고 탄탄히 받쳐줘야 함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저자의 아버지는 건물 터를 닦는 사업을 시작했지만 기록적인 혹한으로 사업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부동산 임대업에 종사했던 어머니는 서브프라임 사태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 할머니는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려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가정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치부하는 데 좌절하였고 새어머니는 높은 의료비 부담으로 값싼 마약성 진통제에 의지하다 정신 건강이 쇠약해졌다. 할머니는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숨어 지내기 위해 이사를 다니다가 남편이 없고 주거가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양육권 소송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하고, 저자는 친척 집에 거주할 당시 학교에서 부모 확인을 받아오라는 과제 때문에 정상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에 위축감을 느낀다. 책 전반은 한 가족의 역사를 통해 “노력한 것만큼 얻는 거라는... 생각에도 일말의 진실은 있지만 그게 진실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것을 입증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는 이들의 자립과 재기를 지원할 방법을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독자는 학교 교육 및 경제·금융·건강 교육, 직업훈련, 아동인권, 사회보험, 가족 돌봄, 공적 부조 등 제도의 한계를 인식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할 열의가 강하게 불어넣어질 뿐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먹먹한 여운의 힘으로 가족과 이웃의 처지에 공감할 용기가 생길 수 있다. 나아가 독자는 누군가가 겪는 고난을 사회제도와 연계해보며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는데 한 발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역경을 자주 경험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역경의 이유는 노력과 요령이 부족해서가 아닐 수 있다. 애를 써도 어려움에서 탈피하는데 필요한 정보나 경제적·심리적 디딤대가 없고 경제적 빈곤이 감정적 빈곤으로 이어져 자녀를 온전히 길러낼 수 없다면 똑같은 어려움이 세대를 거쳐 반복될 수 있다. 
     
    다만 저자는 부모와 조부모 세대와 달리 본인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만은 뚜렷하게 전한다. 바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보여준 극진한 사랑과 진심어린 위로, 그들과 함께 했던 놀이시간이다. 저자는 고등학교까지 21번의 이사를 경험하면서도 위험한 건축자재가 널려있거나 공중에서 농약이 살포되고 트럭의 기름때가 튀기는 마당과 아이가 납치되어 살해되는 지역사회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도 가족과 다른 길을 가려 부단히 애썼고 지금은 뜻하는 대로 삶을 이뤘다고 자신한다. 현재의 복지제도가 삶의 거친 풍파를 막아주지 못할 수 있다. 우리는 뜻이 맞는 사람과 복지제도를 바꿀 정도의 영향력을 당장은 갖추지 못했을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가족들이 빈곤의 대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자녀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존중의 표현, 즐거움의 공유임을 역설하고 있다. 아이가 삶의 갖은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 그건 어느 순간에도 아이를 믿어주는 보호자가 따뜻한 미소와 손길을 건넬 때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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