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혹은 애도의 원환(圓環)* :『소년이 온다』의 세계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 207쪽
한 인터뷰에서 한강은『소년이 온다』를 쓰는 동안 “압도적 고통”으로 매일같이 눈물을 흘렸다고 술회했다. 그녀가 느낀 고통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광주’의 고통 혹은 ‘광주’라는 고통은 그것이 ‘민주화 운동’이라는 역사적 이름을 얻고 ‘민중 항쟁’이라는 정치적 의의를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의미로도 환원될 수 없을 심원한 아픔으로 우리 안에 박혀 있다. 문학의 역할이 상처를 기록하여 잊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면,『소년이 온다』는 이 일을 수행하는 소설적 윤리의 정점에 놓일 만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소년(들)을 통해 폭력의 시절 그곳에서 스러져 간 무수한 이름 없는 존재들을 기리는 애도의 실천이다. 극진한 애도의 의지는 희생된 모든 이들을 향해 있는데, 특히 거리에서 죽어간 소년과 그 소년을 찾기 위해 상무관과 도청을 오가는 소년을 중심으로 세밀하게 드러난다. 둘의 희생과 우정은 절대적 폭력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한 소년이 다른 한 소년보다 조금 더 오래 살아 있었을 뿐, 이들의 운명은 같다. 소년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상황은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가 말한 ‘존재의 취약성’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다
『소년이 온다』의 세계 곳곳을 채우고 있는, 생명을 빼앗기고 형태를 잃은 육체들에 대한 세세한 묘사 그리고 쌓여 있는 시신들의 풍경에 관한 처절하리만큼 집요한 기술은 ‘죄 없는 취약성’을 뚜렷하게 증거한다. 특히 2장 <검은 숨>은 형언 불가능한 참혹한 소멸의 과정을 좇아 기어코 담아내는, 이 작품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압도적인 부분이다. 누가, 무엇이 생생하게 살아있던 몸과 넋을 시취(屍臭)와 부유(浮游)의 어두운 명부로 몰아갔는가.
하염없이 흘러나오는 피와 사정없이 부풀어 오르는 부패로 상징되는 신체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취약성은 폭력에 의해 상처받을 가능성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취약성이 곧 저항과 연대가 일어나고 수행되는 진원이자 계기라는 진실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 준 것 역시 주디스 버틀러다. 그녀는 취약성 때문에, 나아가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자기와 타인을 돌보는 데 헌신하게 될 인간의 가능성을 역설했다.『소년이 온다』가 독보적으로 이뤄낸 성취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헌신하는 자’들의 세계를 조명함으로써 역사적 진실의 깊은 숭고함에 가닿았다는 데 있다.
광주의 비극을 미성년 인물을 통해 서사화하고 재현한 문학적 시도들에서 첫 장면에 놓이는 작품은 최윤의『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이다. 이 소설에는 광포한 폭력을 겪은 소녀가 등장한다. 그녀 이후에『소년이 온다』의 동호가 또 다른 기억할 만한 존재로 등장하는 것이다. 동호는 친구의 주검을 찾아 거두고자 하는, 죽은 자를 향한 헌신이라는 수행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주디스 버틀러는 헌신을 ‘타자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실천으로 설명했지만, 소년의 헌신은 반대로 죽음을 위하려는 실천이다. 그는 친구를 발견하지 못하지만, 방기되고 투기된 주검들을 닦고 매만지는 이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한다.
상무관은 위기와 위험 속에서 급박하게 열린 애도의 공간이었다. 폭력의 세계에서 애도는 작은 촛불처럼 온기와 빛무리를 띤다. 온기와 빛무리 안에 소년이 있고, 소년과 꼭 닮은 이들 곧 한결같이 죽은 자를 돌보는 일을 했던 존재들이 있다. 절절한 통곡의 공간이자 애틋한 애도의 공간인 상무관은 궁극적으로는 짓밟힌 민주주의를 향한 애도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애도의 윤리성은 애도의 ‘끝’이 아니라 ‘지속’과 ‘반복’에서 얻어진다. 이제『소년이 온다』의 세계를 다시 떠올려보자. 모든 인물들은 서로 사슬처럼 연관되어 있고 또 닮아 있으며, 부드럽고 큰 원처럼 연결되어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난다. 애도란 이런 것이고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이 책 『소년이 온다』는 간곡하고 또 간절하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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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환(圓環) : 끊김 없이 연결된 둥근 고리. ‘순환하는 시간과 역사’ 혹은 상처가 봉합되고 완전성으로 회복되는 과정, 특히 ‘공동체적 회복’, ‘기억의 회복’을 뜻하는 은유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함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 UC 버클리대학 비교문학과 교수. 젠더 이론가. 『위태로운 삶』(Precarious Life) 등의 저서를 통해 타자의 삶의 취약성에 대한 애도에서 출발해 인간과 주체를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연대와 정의로 나아가는 통찰을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