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로 집중되는 인재들, 국가의 미래는 어디로 가는가
“기술을 둘러싼 국제 경쟁이 국가의 존망을 가르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사회에서 개인은 안정적인 전문직을 찾아 떠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국가 차원에서는 다시 기술을 붙잡지 않고는 미래를 상상할 수 없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 157쪽
첨단 과학기술이 산업·경제·사회 구조를 재편하는 가운데 연구개발을 통한 혁신 축적과 원천기술 확보 역량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저출산과 고령화 그리고 추격형 성장이라는 한계 속에서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을 기반으로한 선도형 경제로의 전환을 국가 전략으로 설정하고 있다. 바로 이 전략의 핵심 동력인 ‘인재’를 둘러싼 주요국 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인재전쟁: 공대에 미친 중국 - 의대에 미친 한국』은 이러한 배경 아래, 인재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 속에서 한국의 현주소를 중국과의 대비를 통해 보여준다. 이 책은 2025년 방송된 KBS 다큐 인사이트〈인재전쟁〉을 바탕으로, 방송 시간의 제약으로 담지 못했던 내용을 심층 자료를 보완해 출간되었다. 첨단 과학기술 분야 취재가 쉽지 않은 중국에서의 현장 인터뷰 자료를 포함해 인재들의 전공 선택이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비교적 생생하게 제시한다.
Part 1, ‘공대에 미친 중국’은 중국에서 공학 인재가 자연스럽게 모이게 된 구조를 보여준다. 저장대학교와 칭화대학교 등의 사례를 통해, 저자들은 대학의 인재 양성과 연구, 창업과 산업 현장이 긴밀히 연결된 기술 인재 생태계에 주목한다. 소수정예 교육과 높은 수준의 연구 환경, 창업 네트워크는 젊은 유니콘 기업 창업자와 핵심 과학기술 인재를 지속적으로 배출해 왔다. 이러한 생태계는 오랜 기간 지속된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 투자와 산업 육성 전략,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대학 차원의 노력이 결합된 결과이며, 미·중 무역전쟁 이후 과학기술을 국가 생존 전략의 핵심으로 재설정한 정책 기조는 공학 분야가 합리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이에 대비되는 Part 2, ‘의대에 미친 한국’은 우수 인재의 의대 진학이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과 제도적 환경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성적이 우수하면 의대’라는 기대는 사교육 환경과 결합해 취학 이전부터 대입까지 하나의 경로로 수렴하며, 선행·반복·문제 풀이 중심의 학습은 의대 진학에 맞춰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로는 탐구와 실험, 실패를 통한 학습 등의 미래 역량 개발과는 거리가 있다. 더 나아가 의대 쏠림은 재수·N수, 반수 등의 경로를 통해 강화되며, 과학기술 분야 인재 이탈을 누적시키고 있다. 저자들은 그 배경으로 IMF 외환위기 이후 형성된 ‘불안 사회’를 지목하며, 연구·개발 직군의 불안정한 경험 속에서 의사가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상징하는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고 분석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책이 이러한 현상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국가 시스템 차원에서 인재의 확보·배분·유지 문제로 재구성했다는 점이다. 중국과의 비교를 통해 공학 인재의 부족을 경제성장 전략과 인재육성 정책 간 실질적 연계 미흡, 노동시장의 보상, 경력개발 등과 맞물린 구조적·제도적 문제로 제시하며, 한국의 위기를 드러낸다. 다만 의대 쏠림과 이공계 기피는 이미 장기간 누적된 구조적 문제이기에, 이 책은 그 체계적인 원인 분석보다는 문제의식 환기에 더 무게를 둔다.
이 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핵심은 사람, 곧 인재다.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답을 찾아내는 통찰력, 아이디어를 실제 성과로 연결해 내는 실행력이 인재의 조건이나 지금 한국 사회에는 그런 인재를 길러낼 제도적·문화적 토대가 부족하다.”(155쪽)라는 말로 압축된다. 과학기술을 축으로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시대에 이는 단순히 교육 차원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 전략의 문제인 것이다.
『인재전쟁』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사회에서 개인의 불안을 외면한 채 인재의 선택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것인가, 아니면 국가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도전이 지속 가능한 조건을 만들 것인가. 최소한 과학기술 분야에 흥미와 적성, 역량을 지닌 인재들이 사회적 압력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공학자의 길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환경 조성은 국가가 회피할 수 없는 책임이다. 이 책은 인재를 둘러싼 선택의 결과가 국가의 미래로 귀결되는 지점에서, 정책 결정자와 입안자에게는 책임 있는 판단과 근본적인 설계를, 사회 구성원에게는 미래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