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남성은 새로운 마이너리티인가
“이제 성 불평등은 불공평하고 인간의 잠재력을 낭비하게 만든다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불우한 환경에 있는 사람이 소녀가 아니라 소년일 때도 그것은 여전히 사실이다.”
- 197쪽
저자 리처드 리브스(Richard Reeves)는 이 책에서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간과된 ‘뒤처진 남성(men left behind)’이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다. 뒤처진 남성은 비유컨대 ‘오늘의 새로운 마이너리티’이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진보도 보수도 이 문제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에게 명성을 안겨준 전작『20대 80의 사회』보다 이 책을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명료한 문장과 유머는 가독성을 높이고, 세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로서의 생생한 경험담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여전히 ‘유리천장’, 즉 최상층 지위 집단 내부의 여성 차별은 존재한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과거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영역, 이른바 ‘스템(STEM)’* 직군에서 여성의 성취는 눈부시다. 평균적 남성들은 확연히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그냥 여자들이 남자보다 똑똑하게 태어났잖아요. 그리고 이제 그게 드러나고 있는 겁니다.”(133쪽) 본문에 인용된 대학교 3학년 조너선의 말은 그대로 한국 사회에 대입해도 될 정도다. 이를테면 최근 10년 한국의 독서 시장에서 젊은 남성 독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년 가까이 대학과 여러 기관에서 강의하며 느낀 바도 다르지 않다. 저자는 단순히 여성들의 ‘진격’으로 인해 남성이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 남성이 ‘후퇴’하고 있음을 데이터로 보여준다.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지적 겸손이다. 저자는 손쉽게 인과나 결론으로 향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미국에는 학업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그 수혜자는 대부분 여학생들이다. 남학생들은 지원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혜택도 받지 못한다. 요즘 남자들은 왜 그렇게 의욕이 없는 걸까? 저자는 여러 전문가의 입을 빌려 ‘모르겠다’고 털어놓는다. 여성에 비해 지나치게 저조한 남성의 참여율과 낮은 동기부여는 그야말로 수수께끼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안은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에 비해 같은 시기의 인지적 발달이 느린 것은 과학적 사실이라면서, 남자아이를 1년 늦게 입학시키는 제도를 고려하자고 말한다. 또한 전통적으로 여성이 다수인 이른바
‘힐(HEAL)’** 직군에 남성을 지금보다 더 많이 끌어들이자고 제안한다.
아쉬운 점들도 있다. 저자는 미국의 관용표현이 된 ‘유해한 남성성(toxic mas-culinity)’이라는 개념을 처음부터 강하게 비판한다. 성 불평등이 양방향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남성성 전체를 죄악시한다는 이유에서다. 일리 있지만 정밀한 비판이라 보긴 어렵다. ‘유해한 남성성’은 남성성 자체가 유해하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남성성 중에 어떤 유해한 측면’을 가리키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유해한 남성성’을 부정하느라 실제 일어나는 심각한 현상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청년 남성의 극우화다.
2024년《파이낸셜 타임스》의 ‘젠더 이데올로기 갭’ 특집 기사에 따르면, 미국‧영국‧독일‧한국에서 과거에 비슷했던 청년 남성과 여성의 이념 성향이 최근 10여 년 사이 엄청나게 달라졌다. 여성은 더 좌경화되고 남성은 더 우경화되는 쪽으로 크게 갈라진 것이다. 데이터가 과장됐다는 비판도 있으나 추세는 다른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이 책은 그러한 변화의 사회적 함의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설령 남자들이 뒤처지는 게 사실이라 해도, 스스로 의욕이 없는 걸 어쩌라는 것인가? 그런 남자들을 돕는 노력으로 가난한 여성을 더 많이 돕는 게 낫지 않나?” 그러나 소수자가 모두 동질적이지 않듯이, 빈곤 남성도 빈곤 여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다음과 같은 저자의 호소는 진지하게 고민할 가치가 있다. “소년과 남자들을 걱정하는 보수주의자들은 경제적 불평등을 걱정해야 한다. 하지만 불평등을 우려하는 진보주의자들은 소년과 남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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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필수 인재를 양성하는 융합 교육 시스템으로,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수학(Mathematics)의 4가지 분야를 융합해 실생활 문제 해결 능력과 창의적 사고를 기르는 교육 및 산업 분야를 말함
** 기술, 공학, 수학 중심의 STEM 직업군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주로 Health(건강/의료), Education(교육), Administration(행정/관리), Literacy(문해력/상담) 등 사람을 돌보고 교육하며 사회적 기반을 지원하는 ‘케어 경제(Care Economy)'와 ‘사람 중심'의 업무 분야를 통칭하여 일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