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익과 세계의 평화 : 전쟁의 순간에 균형을 고민한 미국의 대통령들
“닉슨 대통령은 또한 미국이 또다시 소모적인 해외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 이른바 닉슨독트린을 제시했다. ... 베트남과 같이 다른 형태의 침략일 경우에는군사적·경제적 지원은 제공하겠지만 전투 병력을 파견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해당 국가들은 자국 방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 408쪽
어느 국가에게나 전쟁은 자국의 안보에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이므로, 은밀하고 신속하게 추진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왔다. 특히 이 과정에서 최고 정책결정자의 고민과 선택은 비밀스럽게 보장되어야 하고, 한번 내려진 결정은 모든 국가 자원을 동원해서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민주주의 발전은 국가 운영 방식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이로 인해 ‘외교·안보 정책의 민주화’도 이루어지게 되었다. 관련 정보와 사실이 보다 폭 넓게 공개됨에 따라, 대통령이 전쟁이라는 막중한 국가 대사를 결정할 때 그 결정의 바탕이 되는 고민과 정보가 비교적 상세히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전쟁과 대통령』은 양극 체제라는 냉전 대결의 시기, 미국 대통령이 전쟁이라는 순간과 마주했을 때 고려해야 했던 국내의 정치적 상황과 국제안보적 요인 그리고 전쟁과 연동된 국내외의 경제 상황, 언론의 반응 등 다양한 요인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특히 대통령이 전쟁을 둘러싼 고민에 처했을 시기의 미국내 정치적 논쟁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어, ‘전쟁과 대통령’이라는 제목보다는 ‘전쟁의 정치와 대통령’이라는 제목이 보다 더 적절해 보인다. 이 책은 12개의 장에 걸쳐 6명의 대통령과 관련한 구체적인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특정한 순간에 대통령직에 있지는 않았더라도, 매시기마다 중요한 영향을 끼친 주요 정치인들과 그들의 역할까지 두루 소개하고 있어, 2차 대전 전후부터 냉전이 끝날 때까지, 전쟁을 둘러싼 미국 모든 대통령의 생각과 세계관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세계질서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로 불리며, 이른바 미국이 제공한 ‘국제 공공재’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탱하는 가장 핵심적인 버팀목이었다.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와 미국이 주도한 각종 동맹체제가 여기에 해당하며, 한국과 같은 나라는 미국이 제공하는 이러한 제도를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자유주의 국제질서 속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성장한 국가인 셈이다. 6명의 대통령을 둘러싼 다양한 자료와 해석은 어떤 의미에서는 미국이 주도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켜내기 위한 힘겨운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전쟁의 위기는 베트남 전쟁을 제외하고는, 모두 구소련과의 대결에서 비롯된 국가정책과 관련된 것으로,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은 당시의 반공 민주주의 세계관에 충실했음을 잘 보여준다.
『전쟁과 대통령』에는 두 개의 키워드가 관통하고 있는데, 하나는 ‘뮌헨협정’이고 다른 하나는 ‘케인즈주의(케인즈 이론)’이다. 전자의 경우 1938년 9월에 유럽 주요국과 독일 사이에 열렸던 회담으로, 당시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들은 히틀러의 팽창주의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독일이 요구한 체코 영토 일부(주데텐란트)를 히틀러에게 양도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의 역사가 말해 주듯,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이러한 유화책은 히틀러의 야욕을 막는 데 실패했고, 이때부터 ‘뮌헨협정’은 전쟁의 위기에 ‘양보 및 타협’이 가지는 이해득실의 상징적 표현이 되었다.
반면 ‘케인즈주의’는 경기 팽창의 효과를 둘러싸고 근대 이후의 모든 정부가 고민했던 바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전쟁은 곧 막대한 재정 지출을 수반하며,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 간의 매우 밀접한 상호의존적 결합을 고려할 때, 대통령에게 있어 전쟁은 곧 ‘경제’와 직결된 문제였다.
닉슨 대통령의 목표는 베트남 전쟁도 패배하지 않는 동시에, 대통령에 대한 국내 지지와 공산권을 상대로 한 냉전의 주도권 모두를 놓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이 처한 현실은 매우 곤혹스러웠고, 이 책에 잘 드러나듯 ‘닉슨독트린’을 발표함으로써 미국이 떠안고 있었던 국제 안보의 부담을 다소나마 줄여보고자 했다. 오늘날의 상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닉슨독트린’과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일정 부분 맞닿아 있는 측면이 있다. 냉전기와 비교해 볼 때 오늘날 미국의 힘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고, 전후 질서 재정립 과정에서 미국이 설계하고 제도화했던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곳곳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의 등장이 아직 요원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20세기 미국 대통령의 고민을 현재 상황에 비추어 살펴봄으로써, 국제질서의 조정기를 헤쳐나가야 하는 모든 국가에 나름의 통찰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