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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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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읽기의 위임, 사고할 수 없는 무책임한 인간을 낳는 위험한 도발
서평자 유영만 발행사항 795호(2026-09-16)

읽기의 위기 : AI 시대, 누가 읽고 쓰는가?

  • - 청구기호 : 028-26-20
  • - 서명 : 읽기의 위기 : AI 시대, 누가 읽고 쓰는가?
  • - 저자 : 크리스토프 엥게만
  • - 발행사항 : 헤이북스

목차

1. 독서의 위기
- 독서의 위기 | 왜 우리는 더 이상 읽지 않게 되었나?
- 독서를 관찰하다 | 읽고 쓰는 순간, 누군가 우리를 관찰하고 있다
- 보론 | 그래프-사회적 데이터의 질서로 생겨난 새로운 차원
 
  2. 쓰기 도구, 그리고 플랫폼 구술성
- 말과 글, 경계가 사라진 텍스트 | 팟캐스트 시장의 팽창으로 시작된 변화
- 쓰기 도구에서 말하기 도구로 | 말이 글이 되며 생겨난 텍스트 자원
- 말하기와 AI | AI의 급격한 발전을 가져온 말하기 도구
- 플랫폼 구술성 | 말하는 인간과 읽는 기계
 
  3. 가상 대학의 등장
- 읽어 주는 사람 | 독자들은 왜 영상 제작자에게 독서를 위임했나?
- 새로운 강의와 지성의 암흑망 | 구어로 전파되는 지식,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
 
  4. 플랫폼 카리스마
- 플랫폼 카리스마 | 존경받는 화자가 되기 위한 진정성 필터
- 위기의 진정성 | 높아진 정보 접근성과 서사에 대한 무관심
 
  5. 새로운 라틴어, 문자라는 장벽
- 장벽 안과 밖 | 문자의 장벽은 어떻게 지식을 권력화했나?
- 새로운 라틴어 | 누구나 읽을 수 있지만, 소수만 읽는 시대

서평자

유영만(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

서평

읽기의 위임, 사고할 수 없는 무책임한 인간을 낳는 위험한 도발

“만약 AI가 인간보다 더 빠르게 잘 읽는다면, 만약 새로운 동영상 강의처럼 다른 누군가가 독서를 대신해 플랫폼 구술성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의 지식을 우리에게 제공한다면,  
왜 우리는 여전히 무엇인가를 스스로 읽어야 할까?” - 183쪽
 
 
이 책의 저자 크리스토프 엥게만(Christoph Engemann)은 현대 사회의 독서 감소 현상을 단순한 게으름이나 영상 매체의 유혹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미디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이 정보를 다루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재편된 결과로 진단하며, 그 중심 개념으로 ‘플랫폼 구술성(Platform Orality)’, ‘플랫폼 카리스마(Platform Charisma)’, 그리고 ‘이차적 불투명화(Secondary Opacification)’를 들고 있다. 이 세 가지 개념은 오늘날 인간의 인지 생태계와 미디어 환경이 어떻게 변질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삼각 구조를 이룬다. 저자가 제시하는 이 개념들이 읽기의 위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고의 위기를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 
 
이 삼각관계의 정점이자 저자가 내린 분석의 가장 날카로운 지점은 ‘이차적 불투명화’다. 미디어론에서 일차적 불투명성이 미디어 기기 자체를 다루기 어려워 발생하는 기술적 장벽이라면, ‘이차적 불투명화’는 사용자 환경(UI)이 극도로 편리하고 투명해진 결과, 그 배후에서 작동하는 거대한 데이터 인프라와 AI 알고리즘의 메커니즘이 오히려 완벽하게  
은폐(불투명화)되는 현상을 뜻한다. 즉 ‘플랫폼 구술성’과 ‘플랫폼 카리스마’가 감추는 기계의 장막이 바로 ‘이차적 불투명화’다. 
 
이 세 개념 간의 논리적 결합은 인간의 읽기 행동을 뿌리째 흔들며 치명적인 사고의 위기를 낳는다. 첫째, 독서의 위임과 능동적 사유의 거부다. 플랫폼 구술성과 플랫폼 카리스마가 결합하면서, 대중은 이제 수백 페이지짜리 두꺼운 책을 직접 읽고 고뇌하는 고통을 피하고 책을 읽는 수고로운 노동을 유튜버나 팟캐스터 같은 소수의 스피커들에게 전적으로 외주(위임)를 준다. 카리스마를 가진 화자가 책을 대신 꼼꼼히 읽고 요약 · 해석하여 말로 들려주면, 청중은 그저 편안하게 듣기만 한다. 결과적으로 카리스마적 화자가 떠먹여 주는 말을 소비하는 동안, 인간의 뇌는 텍스트를 깊이 결합하고 사유하는 법을 잊어버리기 시작한다. 대중은 지식을 얻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 문장과 대면하며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진짜 읽기’는 완전히 실종된다. 
 
둘째, 말하는 인간과 읽는 기계의 역설적 교차다. 대중이 영상을 보고 들으며 스스로 읽기를 포기하는 사이, 이차적 불투명화의 장막 뒤에 숨은 인공지능(AI) 중 하나인 대규모 언어모델(LLM)은 인간이 플랫폼에 남긴 모든 말과 글, 디지털 흔적을 가장 집요하고 빠르게 읽기를 반복한다. 인간은 말만 하고 기계가 읽는 이 기괴한 문명적 역전 현상 속에서, 지식을 생산하고 해석하는 헤게모니는 인간에게서 기계로, 그리고 그 기계를 소유한 극소수의 테크 엘리트에게로 넘어간다. 저자는 이를 중세 시대 소수 성직자만 라틴어를 독점했던 것에 비유해 새로운 라틴어 시대라고 경고한다. 문자를 읽는 능력이 다시 권력 장벽이 되면서, 대중은 읽기 능력을 상실한 채 플랫폼이 떠먹여 주는 구술 데이터의 노예가 된다.  
 
셋째, 검증 불가능한 진정성의 지배다. 문자 시대의 읽기는 텍스트의 앞뒤 맥락을 대조하고 출처를 따지는 비판적 행위였다. 그러나 플랫폼의 투명한 가상 인터페이스(이차적 불투명화) 뒤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플랫폼 카리스마는 논리와 팩트체크의 자리에 감정과 진정성이 차지한다. “이 내용이 사실인가?”라는 질문은 “내가 좋아하는 저 유튜버가 진심으로 말하고 있는가?”로 대체된다. 비판적 읽기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사회는 확증 편향과 자극적인 내러티브, 가짜 뉴스에 극도로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오늘날의 읽기의 위기는 단순히 사람들이 책을 멀리한다는 현상이 아니다. “인간은 플랫폼 속에서 말만 하고, 기계가 인간을 대신해 읽는 기술적 생태계가 구축되었다”는 뜻이다. 즉 플랫폼 구술성이 손짓하는 유혹의 덫과 편리한 환경 속에서, 대중은 플랫폼 카리스마를 가진 이들에게 사유의 권위를 통째로 넘겨주고 있다. 그리고 그 배후에서 인간의 인지 능력을 제어하는 AI와 플랫폼 권력의 작동 방식은 이차적 불투명화를 통해 철저히 가려져 있다. 이 거대한 기술적 공모 속에서 인간은 점차 스스로 읽고 사유할 줄 모르는 존재로 퇴화하고 있다. 그렇기에 저자는 AI가 대신 읽어주고 플랫폼이 다 풀어내 주는 시대일수록, 화면 뒤의 불투명한 알고리즘을 걷어내고 내 눈으로 오롯이 텍스트와 대면하는 직접 독서만이 인간의 주체성을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이라고 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