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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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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손절이라는 단어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분위기가 담겨 있다
서평자 노명우 발행사항 796호(2026-09-30)

손절사회 : 손익계산이 되어버린 인간관계, 연결 불가능성의 시대에 관한 탐구

  • - 청구기호 : 158.2-26-18
  • - 서명 : 손절사회 : 손익계산이 되어버린 인간관계, 연결 불가능성의 시대에 관한 탐구
  • - 저자 : 이승연
  • - 발행사항 : 어크로스

목차

서론: 가장 외로운 시대, 가장 외로운 세대
  1부 내게 유해한 사람 : 치료요법 문화와 손절의 사회학
     1장 인간관계 전문가의 시대
     2장 내게 무해한 사람
     3장 선택하지 않을 선택
2부 너 자신을 알라 : 치료요법 문화의 인간 상품화 프로젝트
     4장 프로필 대 프로필의 만남
     5장 프로필 가꾸기 프로젝트
3부 친구보다 좋은?: 소비주의와 친밀성의 상품화
     6장 너 자신을 돌보라
     7장 상품이 되어버린 인간
4부 운명을 읽기, 운명을 만들기 : 여성과 치료요법 문화의 위험한 동맹
     8장 누가 치료요법 문화를 주도하는가
     9장 치료요법 문화의 잔인한 약속
결론: 사랑은 나의 권력

서평자

노명우(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서평

손절이라는 단어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분위기가 담겨 있다

“인간관계에 관한 문화적 사고방식의 변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현상 중 하나가 바로 손절이라는 용어의 유행이다. ... 왜 우리는 외로워하면서도, 외로움을 인정하고 서로 의지하기보다는 ‘자발적으로’ 깊이 있는 관계에서 도피하는가? 이것이 이 책이 답하고자 하는 질문이다.” - 24쪽  
 
“헤어지자 보내온 그녀의 편지 속에 곱게 적어 함께 부친 하얀 손수건” 1969년에 발표되어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트윈 폴리오의〈하얀 손수건〉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면, 영원한 인간관계는 없다는 점이다. 인간은 시대를 막론하고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연인의 인연을 맺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 관계는 평생 가지 못하고 단절되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친교와 절교, 사랑과 이별을 되풀이했다는 점은 변함없으나, 관계를 정리하는 이유와 관계를 끊어내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예전에는 인간관계의 단절을 알릴 때 하얀 손수건을 동봉한 편지를 보냈다면, 지금은 카톡으로 관계 정리를 통보하고 인스타그램 차단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며 관계의 흔적을 지운다.  
 
‘썸 타다’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 전통적인 방식의 연애에 익숙한 사람은 사귀지 않는 것과 사귀는 것 사이의 그 중간이라는 ‘썸’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관계의 상황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사귄다’라는 단어 이외에 ‘썸’이라는 단어가 별도로 필요했던 이유는 연애에 대한 해석 자체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달라졌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하면 과거에 없던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동일한 현상을 표현하는 단어가 바뀌기도 한다. ‘썸’을 이해하는 사람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어휘력의 차이가 아니라, 살아내는 시대에 대한 감각의 차이다. 
 
‘썸’ 이후 오늘날의 변화된 인간관계 풍속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는 ‘손절’이다. 원래 주식 투자 용어인 손절은 더 큰 손해를 막기 위해 손실을 감수하고 팔아버린다는 뜻이다. 한때의 유행으로 그치지 않고 다수가 어떤 상황을 묘사하는 도구로 선택한 단어는, 그 시대의 정서와 무의식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승연의『손절사회』는 관계의 단절이 주식 투자 용어에서 유래한 ‘손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세태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저자는 1998년생,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손절의 세태를 가장 가까이서 살아내고 있는 젊은 사회학 연구자다. 기성세대의 눈으로는 좀처럼 포착되지 않는 젊은 세대의 감각과 언어를, 저자는 그 안에 몸담은 사람만이 알아챌 수 있는 촘촘함으로 짚어낸다. 
 
주식 투자 고수가 강조하는 투자법은 이렇다. 신속한 판단과 재빠른 실행이 중요하고, 예측력이 무기다. 기업의 미래를 남보다 먼저 알아본 사람이 돈을 벌고, 예측이 틀렸다면 손에 쥐고 있지 말고 손해를 보더라도 팔아버려야 한다. 이 강조점은 이른바 인간관계 전문가들의 조언과 다를 바 없다. 유튜브에 ‘인간관계’를 검색하면 ‘손절해야 할 사람 유형 TOP 3’, ‘엮이면 안 되는 독이 되는 사람 유형’ 같은 제목들이 뜬다. 좋은 기업을 먼저 알아보는 혜안처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빨리 알아채야 하기에 MBTI가 중요해지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미가 보이면 관계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그 관계를 빨리 끊어내야 한다. 손절은 실패가 아니라 인간관계로 인한 인생의 파탄을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여겨진다. 
 
모두가 각자 손절의 주체이며 동시에 손절의 대상이다. 누구나 주식 투자를 하듯 인간관계에서 손절이 만연해지면 역설이 생긴다. 손절이 일상화되어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외롭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손절이 빈번해질수록 관계의 지속성은 짧아지고, 그것이 다시 외로움을 키운다. 상처받지 않으려 먼저 끊고, 그 결과 더 외로워지는 악순환.  
저자는 이 악순환을 개인의 성향이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로 바라본다. 
 
물론 착취적이거나 폭력적인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 저자가 경계하는 것은 그런 절박한 단절이 아니라 손절이 해방과 치유의 언어로 각색되고, 나아가 용기로 찬양되는 흐름이다. “갈등과 마찰을 직면하는 용기, 기다림을 위한 인내 없이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이 한 문장에 책의 메시지가 압축되어 있다.  
조금 불편하다고, 조금 상처받았다고 곧바로 끊어버리는 문화가 결국 우리 모두를 더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는 경고다. 물론 이 책에 ‘손절’이 만연한 사회를 벗어날 수 있는 당장의 뾰족한 방법이 제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손절이 일상화되고 관계의 지속성이 짧아지면서 외로움이 커지는 악순환이 왜 나타나는지를 짚어낸다. 그런 점에서 ‘손절’이라는 익숙한 현상을 통해 오늘날 관계의 변화와 그 원인을 촘촘하게 짚어낸 이 책의 통찰은 매우 독창적이고 날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