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이 만든 우리의 역사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들의 총합이다. 물건들은 ‘확장된 자아’다.” - 215쪽
저자는 미국의 한 조사를 인용해 평균적인 미국 가정에 약 30만 개의 물건이 있다는 사실을 소개한다. 이는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물건이 우리의 삶과 역사에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우리의 역사는 책장 속에 꽂혀 있는 두꺼운 사료(史料) 더미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랍 속에서 굴러다니는 사소한 물건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다. 칩 콜웰의『거의 모든 물건의 역사』는 물건들이 만들어 낸 우리의 역사 330만 년을 거대한 시간의 스케일로 풀어낸다.
이 책은 인류가 물건과 맺어온 관계를 세 번의 큰 도약으로 정리한다. 첫 번째는 ‘도구 만들기’다. 저자는 제인 구달의 연구를 통해 침팬지도 도구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며, 도구 사용 자체가 인간만의 능력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석기를 이용해 더 많은 식량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고, 이는 더 큰 뇌와 정교한 손으로 이어졌다. 커진 뇌와 발달한 손은 다시 더 복잡한 도구의 발달로 이어졌다. 인간이 도구를 만든 것 못지않게, 도구가 인간의 신체와 두뇌를 바꾸어놓은 셈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가장 흥미로운 역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 5,300년 전 알프스에서 죽은 ‘아이스맨 외치’ 사례는 도구에 둘러싸여 있던 고대인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외치는 옷과 신발, 활과 화살, 돌 단검과 구리 도끼, 불씨를 담는 용기와 그 밖의 각종 생활 도구를 지니고 있었다. 저자는 혹독한 알프스에서 자신을 지켜 줄 물건들에 둘러싸여 살았던 외치의 이야기를 통해 낯익은 사물 하나하나가 전하는 기술의 역사와 인간 진화를 이야기한다.
두 번째 도약은 ‘의미 만들기’다. 어느 순간부터 물건이 수행하는 역할은 생존에 필요한 기능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자신을 표현하며, 보이지 않는 믿음을 눈에 보이는 물질로 나타내기 시작했다. 저자는 예술의 탄생을 미적 본능과 자기표현, 상징적 사고가 오랜 시간 결합한 결과로 설명한다. 나아가 인간이 물건에 의미를 부여할 뿐 아니라, 거꾸로 물건이 인간의 행동과 믿음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관음보살상과 노예로 팔려간 여자의 베갯잇에 쓰인 작별 편지 등의 사례를 통해 인간이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는 동시에, 그 물건에 의해 행동과 사고가 다시 규정되기도 한다고 강조한다. 즉, 인간 삶의 여러 의미가 더해지면서 물건은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확장된 자아’가 되는 것이다.
세 번째 도약은 ‘대량 생산’이다. 산업혁명 이후 생산력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고, 20세기에 들어서는 생산의 문제가 소비의 문제로 바뀌었다. 광고와 마케팅을 통해 인간은 새로운 것을 계속 원하는 소비자가 되었고, 빠르게 물건을 버리고 새것을 사들이는 데 몰두했다. 책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역설적으로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비축하는 인간의 심리까지 살피면서 산업혁명, 소비사회, 계획적 진부화, 폐기 공포증을 하나의 긴 흐름으로 묶는다.
3부에 들어 비로소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들과 구별되는 이 책의 차별성이 드러난다. 유물의 역사에 관한 책은 많았지만, 물질의 역사를 넘어 물건의 소비에 함몰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확연히 결을 달리한다. 다만, 대량 생산과 소비주의, 계획적 진부화, ‘폐기 공포증’이라는 저장 강박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내용을 다루는 반면, 책의 전반부에서 보여 준 인류학적 밀도가 차츰 옅어지면서 서술이 다소 산만해지는 경향도 있다. 또한 4차 산업혁명, 즉 AI와 로봇의 시대를 다루지 않은 점도 아쉽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미니멀리즘을 가능한 해법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지만, 이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하기는 어렵다. 물건을 줄이는 개인의 선택만으로 과잉 생산과 소비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오늘날의 사회·경제 구조가 과거에 비해 훨씬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미니멀리즘과 순환 경제를 ‘네 번째 도약’의 가능성으로 제시하며 독자 스스로 자신의 물건과 소비 습관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한 ‘물건의 역사’가 아니라 물건이 바꾸어 온 ‘인간의 역사’다. 돌칼에서 예술품과 신상(神像), 화폐와 플라스틱에 이르기까지 물건은 우리의 몸과 사고, 더 나아가 믿음과 관계를 형성해 왔다. 물건을 통해 인간의 진면목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오늘날 고고학이 지닌 의미와 필요성을 꽤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시작은 고고학이 보여주는 흥미로운 유물 이야기라는 비교적 가벼운 주제에서 출발하지만, 마무리는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훨씬 더 복잡하고 무거운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책을 덮으며 ‘물건이 지배하는 우리의 일상’에 대한 찜찜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정직한 성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