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인류를 위한 감정의 쓸모
“우리는 모두 의존하고 있다!(269쪽) ··· 모든 학문이 축적한 지식은 분명히 말한다. 우리가 제대로 분배하기만 한다면, ··· 근본적 정서성이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 273쪽
시중에 출간된 심리학 개론서를 펼치면 가장 먼저 ‘심리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만나게 된다. 개론서마다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심리학은 대체로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정의 때문인지 심리학은 개인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며, 인간 내부에서 일어나는 정보처리와 심리적 과정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한 학문이다. 필자는 심리학의 이러한 학문적 성격에 매료되어, 심리학에 입문한 지 25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즐겁게 연구를 이어 가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 특성 탓인지, 심리학은 사회·국가·문화·정치처럼 인간이 모여 이룩한 문명에 대해서는 마땅히 내야 할 목소리조차 내지 못할 때가 많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분명 아쉬운 대목이다.
그런 필자에게『감정사회: 감정은 어떻게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제목은 단번에 눈길을 끌었다. 심리학의 주된 연구 주제인 ‘인간의 감정’을 심리학에서는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는 ‘정치’라는 주제와 어떻게 연결할지 사뭇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저자 마렌 우르너(Maren Urner) 교수가 인지신경과학*을 전공했다는 점 역시 이 책을 정독하게 만든 또 다른 이유다. 이 책에서 우르너 교수는 정치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인류의 미래를 바꾸는 데 인간의 감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야기한다. 특히 기후·환경 문제라는 인류의 숙제를 중심에 놓고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먼저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똑바로 바라봄으로써 내 감정이 어떠하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고, 또 알아야 한다. 그다음 이를 바탕으로 이 숙제의 해결을 가로막는, 세상에 만연한 오해와 몰이해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서로의 감정에 관해 정직하게 소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기후나 환경 문제에 대한 인류의 대응이 미진한 이유를 ‘변화가 가져오는 불안’이라는 감정에서 찾는 저자의 진단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우리가 기후 위기에 맞서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할 행동을 미룬 채 ‘그럭저럭 괜찮은’ 현재에 안주하려는 것 역시 ‘안정감’이라는 인간의 감정 때문이라는 주장도 탁견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결국 이 가짜 안정감을 깨뜨려야 하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필자가 이 책을 읽던 시점에 자연은 네팔 대홍수라는 청구서를 인류에게 내밀었다.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지금까지 밀려 있는 청구서가 얼마나 될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의 주장을 고개만 끄덕이며 듣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이야기로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저자는 책의 3부에서 이성과 감정, 사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나누는 이분법과 무엇이든 분리해서 생각하려는 경향을 타파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이성과 감정이, 현재와 미래가, 끝과 시작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연이 내밀기 시작한 청구서들을 받아보며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더 이상 이 책에서 말하는 ‘근본적 감정 이해에 기반한 역동적 사고’를 이해해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당면한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라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로 다가온다.
이 책을 정독한 독자로서 아쉬운 점도 한 가지 전하고 싶다.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필자가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이유 중 하나는 저자가 인지신경과학이라는 학문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저자가 이 책에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학문적 배경에 기반한 심리학적·뇌과학적 연구 결과를 거의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은 못내 아쉽다. 물론 연구 결과들을 나열하는 것이 주장의 명료성을 가릴 수도 있고, 책이 너무 두꺼워져 독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핵심적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로서 인지신경과학 분야의 연구 결과를 좀 더 풍성하게 소개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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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신경과학(Cognitive neuroscience): 인간의 생각과 감정, 기억, 판단 등의 인지 과정이 뇌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임